SF/SF 습작

대학원생에게 온 제안

UJ1UJ1 2022. 9. 2. 03:13

  그가 내 앞에 나타난 지 일주일째다. 그는 카페 테이블 맞은편에 앉아서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 처음 온 날부터 그랬다. 그는 언제나 옅은 미소를 띤 얼굴로 새파란 눈동자로 나의 영혼을 꿰뚫어 보듯이 나를 본다. 나는 항상 그게 부담스러워 그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기 어려워했다.

  그의 첫인상은 어딘가 친숙하면서도 낯설었다. 그의 얼굴은 어딘가 나와 미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었다. 다른 사람이 그를 봤다면, 아니, 볼 수 있었다면, 그를 내 부모님이 잃어버린 친동생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나와 다르다. 그의 얼굴은 너무 잘생겼기 때문이다. 눈은 나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조금 더 크고 똘망똘망했다. 코도 나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더 오똑하고 예뻤다. 입 역시 나와 비슷하지만, 더 생기 있었다. 피부도 나와 색깔은 비슷했으나 훨씬 더 깨끗하고 투명했다. 내 얼굴에 나 있는 작은 흉터와 여드름 자국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유일하게 나와 크게 다른 점은 이국적인 푸른 눈동자였다. 눈, 코, 입을 되는대로 이어 붙인 내 얼굴과 달리 그의 것은 좀 더 작은 얼굴에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결국 그의 얼굴은 전체적으로는 나와 비슷했으나, 바로 연예인이나 모델로 데뷔할 수 있을 것 같은 얼굴이었다. 왜 저 모습으로 나에게 나타난 것일까. 그의 얼굴은 마치 나에게 왜 이렇게 생기지 않았느냐고 따지는 것 같았다.

  나는 그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괜히 앞에 놓인 노트북을 만지작거린다. 노트북에는 내가 읽어야 하는 논문이 띄워져 있다. 그러나 논문의 내용은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하얀 건 화면이고, 검은 것은 글자. 노트북 화면 밖의 시야가 점점 좁아져 오는 것을 느낀다. 심장이 점점 더 크고 빠르게 뛴다. 숨이 가빠오고 가슴이 조여 온다. 시야 주변의 어둠은 점차 중심부로 침식하여, 이제 노트북의 화면 안으로 넘실거린다. 어지러움으로 인해 고개를 제대로 가눌 수가 없다. 죽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한편으로는 이대로 죽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씨? 선재 씨?”

  두개골 안에서 울리는 그의 목소리는 나의 불안감과 두려움을 압도해서 나에게 말을 건다. 그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내 속에서 울려 퍼진다. 덕분에 시야가 다시 맑아지고 정신이 되돌아온다. 온몸이 익사라도 할 뻔한 것처럼 식은땀에 흠뻑 젖어있다.

  “우리 제안은 생각해봤어요?”

  제안. 오늘이 바로 그날이다. 일주일 전에 그가 내게로 온 이유. 나에게 죽을 것 같은 기분을 들게 한 것이 바로 그 제안이다.

  “몇 분 있으면 결정의 시간이에요.”

  몇 분 뒤면 그가 내게 나타난 지 정확히 일주일이 된다. 왜 나에게 이런 선택을 강요하는 것일까. 도대체 나에게서 무얼 원하는 것일까. 왜 하필 나일까. 나는 일주일 전으로 돌아가 그와 함께 있었던 과거를 되짚어보기 시작했다.


  일주일 전. 그가 나에게 나타나기 직전에 나는 똑같은 카페에 앉아서 머리를 쥐어뜯으며 연구하고 있었다. 당시에 나는 몇 달째 똑같은 수학 문제에 시달려 있느라 정신이 피폐해져 있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어렵게 풀릴 문제가 아니었는데. 분명 처음에 교수님께서 문제를 받았을 때는 충분히 풀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학부를 최우등으로 졸업한 나에게, 인공지능이나 응용수학같이 인기 있고 쉬운 분야를 택한 동기들과는 달리 리만가설과 양자역학을 연결 짓는 문제를 연구하기로 마음먹은 나에게, 이 정도 문제는 아무것도 아니었어야 했다. 눈으로 보기에도 돌파구가 여러 개가 보였다. 그러나 그 돌파구들은 모두 함정이었다. 몇 달 동안 나는 실마리를 찾은 듯하다가도 그 실마리를 따라 파헤치다 보면 또 피할 수 없는 벽을 마주치기를 이미 여러 차례 겪었다. 사람도 제대로 만나지 않고 문제를 푸는 데에 몰두했지만, 소득이 없었다. 그날도 난 실마리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내가 계산을 잘못한 것에 불과하다는 걸 깨달은 참이었다. 이제 박사 5년 차가 되어 가는데, 동기들과 달리 제대로 된 논문이 하나 없었다. 나는 점점 더 초조해지고 있었다. 이 문제를 풀지 못한다면 올해 졸업은 물 건너가게 될 것이었다. 올해 꼭 대학원을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업해서 애인인 지연과 내년에 결혼할 준비를 하는 것이 계획이었건만, 수학 문제 하나 때문에 모든 계획이 엉클어지고 있었다.

  그렇게 좌절감에 휩싸여 고개를 푹 숙이고 있을 때 그의 목소리를 처음으로 들었다.

  “차수로 나눠 봤어요? 차수로 나눈 다음에 곱하면 될 것 같은데.”

  왠지 그 말은 밖에서부터 들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부터 울려서 나오는 것처럼 들렸다. 나는 처음에 내가 혼잣말을 한 건 것인지 착각했고, 그다음에는 소리의 근원을 찾기 위해 두리번거렸다. 테이블 옆에 바로 그가 서 있었다. 나는 처음에 그의 얼굴이 익숙하게 느껴져서 내가 아는 사람인가 싶었다. 나중에 깨닫기를, 그가 나를 조금 닮았기 때문에 익숙하게 느끼는 것이었다.

  그가 누구인지 묻기 전에 확인해야 할 것이 있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종이에 무언가 끼적이기 시작했다. ‘차수로 나눈 다음에 곱한다.’ 확인해야 할 디테일이 십수 가지나 되었지만 불가능한 아이디어는 아니었다. 내가 고민하는 문제를 정확히 관통하는 아이디어였다. 디테일을 확인하기도 특별히 까다로워 보이지 않았다. 또 다른 실마리였다. 종이의 한구석에 아이디어를 메모해두었다. 그러고 나서 나는 그에게로 고개를 돌려서 원래 해야 할 말을 했다.

  “혹시 제가 아는 분이신가요?”

  “아뇨, 나는 선재 씨를 잘 알지만 선재 씨는 우리를 모르죠.”

  나를 잘 안다고? 나는 나의 일대기를 머릿속으로 역재생하면서 나를 잘 알 법한 사람을 머릿속에 소환했다. 대학교 동창, 내가 들었던 강의의 교수님, 친척, 내가 가르쳤던 과외 학생, 고등학교 때 담임 선생님…. 머릿속을 이 잡듯이 뒤졌지만, 그의 얼굴과 딱히 일치하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나에게 중요할 수도 있는 사람을 기억해내지 못했다는 사실이 부끄러워져서 그에게 사과했다.

  “죄송한데 누구신지 모르겠네요.”

  “괜찮습니다. 우리를 모르는 게 당연해요. 앞으로 차차 알아나가면 되는 거죠. 앞에 앉아도 될까요?”

  그의 말에 나는 어리둥절해졌다. 내가 모르는 사람인데 나에게 와서 말을 걸었다는 뜻인가? 그다음에는 불쾌감이 들었다. 나를 잘 안다는 뜻은 무엇인가? 그리고 내가 무슨 문제를 고민하고 있는지는 어떻게 안 것인가? 나를 스토킹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또 누구를 의미하는 것일까?

  나의 대답을 듣지 않고는 그는 내 건너편에 앉아서 말을 이어갔다.

  “제안하고 싶은 것이 있어요.”

  그 말을 듣고 나는 그가 사이비 종교 전도사나 방문판매원 같은 사람일까 하고 생각했고, 긴 고민 없이 나는 “관심 없습니다.”라고 말하고 짐을 챙겨서 자리를 옮기려고 했다. 그런데 내가 자리를 옮기려고 하자 그는 나를 따라왔다. 나는 화가 나서 그에게 말했다.

  “왜 따라오시는 거죠?”

  “제안하고 싶은 것이 있어서요.”

  나는 ‘뭐 이런 집요한 사람이 다 있어.’라고 생각하며 다른 자리로 도망쳤다. 나는 그를 뿌리치려고 했지만, 그는 나를 집요하게 쫓아왔다. 나는 머리끝까지 화가 올라 그에게 소리쳤다.

  “그만 따라오라고요!”

  카페 점원은 내가 그와 소리를 높여 언쟁을 벌이는 것을 보고 나를 제지했다. 주변 사람들도 나와 그의 모습을 보고 수군댔다. 나는 카페 점원에게 이상한 사람이 나를 자꾸 따라온다고 그를 카페에서 내보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카페 점원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카페 점원은 어쩔 줄 몰라 하더니 결국 경찰을 불렀다.

  몇 분 지나지 않아 경찰이 도착했다. 나는 경찰에게 이상한 사람이 자꾸 따라와서 귀찮게 한다고 이야기했지만, 경찰은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손사래 치며, 내가 골칫거리라도 되는 양 일단 나를 내보내려고 했다.

  “여기 사람 많으니까 일단 나가서 이야기합시다.”

  “제가 잘못한 게 없는데 왜 나가요? 저 사람이 자꾸 따라온다니까요. 저 사람을 내보내 주세요.”

내가 고집을 부리자 경찰은 못 이겼는지, 내 뒤로 나 있는 카페 창문 밖을 살피며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경찰은 퉁명스럽게 말했다.

  “아무도 안 보이는데요.”

  그는 위아래로 나를 훑어보더니 ‘당신 같은 청년을 누가 대낮에 따라다닌다고 그래’라고 하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경찰이 내 뒤에 있는 사람을 일행으로 착각했다고 생각해서 다시 얘기했다.

  “아뇨, 제 바로 뒤에 있는 이 사람이요.”

  경찰은 내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향해 똑바로 걸어갔다. 이대로라면 경찰은 나를 따라오고 있던 남자와 부딪게 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경찰은 그 남자와 부딪히지 않았다. 그 대신에, 경찰은 남자를 그대로 통과했다. 마치 남자의 몸은 그곳에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고 홀로그램이었던 양, 경찰의 몸은 그 남자가 있던 자리를 그대로 점유했다. 경찰과 그 남자는 한 몸에 머리가 둘 달린 괴물처럼 융합되어, 한 머리는 내가 가리킨 카페 뒤편 구석구석을 두리번거리고 있었고, 다른 한 머리는 나를 지긋이 쳐다보고 있었다. 입가에는 오묘한 미소가 번져있었는데, 마치 나를 비웃는 듯했다.

  “학생, 장난치지 마요. 아무도 없잖아요.”

  나는 어안이 벙벙해져 대충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다.

  “제가 뭔가를 착각했나 보네요.”

  경찰은 의심스러우면서도 동정 가득한 눈초리로 나를 보면서 말을 이었다.

  “학생 괜찮은 거 맞아요? 여기 직원 말로는 혼자 큰소리로 소리치고 있었다던데. 병원에 가봐야 하는 거 아니에요?”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불완전성 공리를 발견한 수학자 괴델은 누군가 자신을 암살할 것이라는 망상에 시달려 음식을 먹지 않다가 아사했다. 집합론의 아버지인 칸토어는 우울증 등의 정신질환에 시달리다 결국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감했다. 게임 이론을 창시한 존 내시는 조현병을 앓았고, 소련의 스파이가 자신을 감시하고 있다는 망상에 시달렸다. 나는 몇 달째 같은 수학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은 끝에 나에게도 망상이 보이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다행인 점은 나는 나를 따라오는 그 존재가 망상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마 늦여름의 무더위에 더위를 먹었겠거니 하고 생각했다.

  나는 그를 신경 쓰지 않으려고 노력해보았다. 그러나 집에도, 침실에도, 화장실에도 따라오는 그를 신경 쓰지 않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그날 밤, 잠자리에 들려고 하는 와중에도 그는 침실 한쪽에 서서 나를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 더군다나 한밤중에도 그의 눈은 새파랗게 빛나고 있어서 잠을 계속 방해했다. 나는 결국 밤새 잠을 설칠 수밖에 없었다.

  날이 밝아서 지친 몸을 이끌고 학교로 출근한 나는 너무 피곤해서 연구에 집중할 수 없었다. 결국 나는 노트북을 끄고 연구실에서 잠시 잠을 청하기로 했다. 연구실에서도 그는 나를 노려보고 있었지만, 다행히 낮에는 밝은 터라 밤보다는 그의 새파랗고 밝은 눈이 덜 방해가 되었다. 나는 의자에 앉아서 눈을 잠시 붙였다.

  눈을 감고 있으면 검은 눈꺼풀 위로 여러 가지 기하학적인 무늬가 춤을 춘다. 무늬는 나비처럼 보였다가 원숭이처럼 보였다가 한다. 무늬는 대칭을 이루다가도 혼란스럽게 어질러지고, 나뉘었다가 합쳐진다. 나뉘었다가 합쳐진다. 어떤 것은 두 개로 나눠지고, 또 어떤 것은 세 개로 나눠지고, 또 다른 것은 네 개로 나눠지고…. ‘차수로 나눈 다음에 곱한다.’ 그것들은 곱해진다. 세 개로 나눠진 것과 다섯 개로 나눠진 것이 만나 색색의 열다섯 개의 쌍이 된다. 열다섯 개의 쌍은 한데 뭉쳐서 커다란 알록달록한 덩어리를 이룬다. 그 덩어리는 마치 회색의 코끼리 같다. 또 어떤 덩어리는 커다란 파란색 고래 같다. 꿈속에서 아이디어와 형이상학적인 직관들은 형이하학적인 형태와 합쳐져서 혼란스러운 그림을 연출한다. 수학적인 규칙은 하나의 커다란 그림이 된다. 나는 그림 속에 빠져서 아이디어의 가능성을 탐구하고 시험해본다. 나조차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커다란 그림에서 나는 구른다. 그리고 그 그림은 무언가를 닮았다. 자세히 보니 커다란 그림은 눈과 코와 귀와 입이 있는 듯하다. 그 그림은 얼굴이다. 그리고 얼굴은 입을 열더니….

  “제 제안을 들어보겠어요?”

  그 얼굴이다. 나는 공포감에 빠진다. 그 얼굴의 눈은 시퍼렇게 빛이 난다. 그리고 그 얼굴은 점점 더 커진다. 나에게 다가온다. 나는 그 얼굴을 피해서 멀어지려고 한다. 하지만 나의 다리는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꿈속이라고 저에게서 도망갈 수는 없어요.”

  얼굴의 말을 듣고 나는 이게 꿈이라는 사실을 알아챈다. 그러나 공포감은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꿈에서 깨어나고 싶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몸의 어떤 부분도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몸이 마비된듯한 느낌이 든다. 그의 얼굴이 점점 더 나에게 가까이 온다. 얼굴은 입을 벌린다. 나는 얼굴에 삼켜진다. 점차 어두워진다. 귀가 울린다. 이상한 소음….

  “따르르르릉. 따르르르릉. 따르르르릉.”

  전화벨 소리에 나는 헉 소리를 내며 악몽에서 깨어난다. 입가에 허옇게 침이 말라붙어있다. 그리고 내 앞에는 그가 서 있다. 그의 얼굴은 마치 아쉽다는 표정이다. 나를 더 괴롭히지 못했다는 듯이.


  전화는 지연으로부터 온 것이었다. 내가 학부생 때 사귄 지연은 석사를 마치고 나보다 일찍 졸업하여 서울에서 회사를 다니는 중이었다. 그에 반해 나는 아직 지방에서 박사를 마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우리는 한 달에 한 번 보기도 쉽지가 않았다. 특히 내가 가난한 대학원생이기에 더 그랬다. 지연은 항상 시간과 돈을 할애해 나를 보러 지방으로 내려왔다. 항상 희생하는 쪽은 지연이었고, 나는 항상 그게 부담스럽고 미안했다.

  이번 전화에서도 지연은 내일 나를 보러 지방에 내려올 거라고 말했다. 나는 내일은 금요일이 아니냐고, 회사는 어떻게 하고 여길 오냐고 물었다. 지연은 도리어 어이없다는 듯이 한숨을 짓더니, 내일은 공휴일이고 같이 보기로 몇 주 전에 약속했다고 반박했다. 나는 아차 싶었다. 연구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날짜가 가는 줄도 몰랐던 것이다. 나는 지연에게 깜빡해서 미안한데 다음에 보는 게 어떻겠냐고 만류했다. 하지만 지연은 한 달이 넘게 못 봤는데 무슨 소리냐고, 월요일에 연차도 이미 냈는데 그러면 어떻게 하느냐고 화를 냈다. 나는 알았다고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나는 지연에게 내 상태에 관해서 이야기할 수가 없었다. 지연이 나를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무서웠고, 잘 설명해낼 자신도 없었다. 다행히도 지연은 내 상태를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그리고 나도 지연과 하루를 보내면서 기분이 나아졌다. 그가 나를 계속 따라다니긴 했지만 지연 덕분에 신경을 덜 쓸 수 있었다. 애인과 함께 맛있는 것을 먹고 수다를 떨면서 스트레스도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밤이 되었다. 지연은 침대 위에 함께 누워서 나를 끌어안은 채로 내 옷 속에 손을 넣고는 몸 여기저기를 더듬거렸다. 자기 몸을 내 몸에 비비거나 입술을 귀에 가져다 대고 신음을 내기도 했다. 지연은 나를 열심히 애무했지만, 나는 이 상황에 집중하지 못했다. 나는 손발이 시체처럼 얼어붙은 채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가 침대 옆에 서서, 호기심 가득한 파란 빛의 눈으로 우리 둘을 빤히 내려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불쾌하고 끔찍했다. 그가 나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가 우리 둘을, 지연을 그런 눈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 끔찍했다.

  지연은 움직이던 손을 멈추고 한숨을 푹 하고 쉬었다.

  “오빠 오늘 왜 그래? 이상해. 자꾸 딴 데 보고 멍때리고. 나 별로 안 보고 싶었어?”

  “미안해. 내가 요즘 스트레스가 많아서 그런지 상태가 좀 안 좋네. 못 하겠다. 그만 자자.”

  “아니 오늘만 그런 게 아니고 요즘 들어 계속 이상하잖아. 연락도 계속 안 되고, 낮에 잔다고 전화도 잘 안 받고. 밤에 안자고 뭐해? 오늘도 계속 정신이 나간 것처럼 내 말에 집중도 안 하고. 오랜만에 만나는데 별로 반가워하지도 않고. 나한테 뭐 숨기는 거 있어?”

  나는 그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하나 잠깐 고민했다. 하지만 지연은 기다려주지 않았다.

  “됐어. 기분 나빠서 못 있겠어. 나 그냥 올라갈게.”

  지연은 말을 마치고는 짐을 싸서 집을 나서 버렸다.

  나는 지연이 나선 집에 홀로 남겨졌다. 엄밀히 말하면 홀로 남겨진 건 아니었다. 그가 있었으니까. 나는 울분을 터뜨렸다.

  “나한테 도대체 왜 그러는 건데!”

  그는 미소를 짓더니 천천히 이야기했다.

  “드디어 우리와 대화할 준비가 되었나 보군요.”

  나는 붉게 충혈되고 눈물로 범벅된 얼굴로 소리쳤다.

  “넌 씨발 뭔데 날 따라다니는 거냐고!”

  “그게 당신이 선호하는 대화의 순서인가 보군요? 좋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먼저 알려드리죠. 우리는 외계의 존재입니다.”

  잔뜩 흥분해서 소리를 지르는 나와 다르게 그는 굉장히 침착하고 동요하지 않는 목소리였다. 그의 이런 반응이 더욱 화가 났지만 달리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그다음은 어떤 게 궁금하시죠?”

  “나한테 왜 이러는 거지?”

  “말했다시피, 당신에게 제안하고 싶은 게 있어서입니다.”

  “제안?”

  “네, 우리의 일부가 되라는 제안입니다.”

  나는 그의 말을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는 좀 더 설명을 요구하는 표정으로 가만히 있었다.

  “음,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시는가 보군요. 어디부터 이야기하면 좋을까요……. 일단 이 모습은 우리의 진정한 모습이 아닙니다. 이것은 선재 씨가 익숙하면서도 적절한 형태로 우리의 모습을 볼 수 있게 선재 씨의 정신에 투영되고 있는 겁니다. 제 본모습은 저기에 있죠.”

  그는 손가락으로 하늘 위를 가리켰다.

  “저기? 하늘 위?”

  “아뇨. 태양계 전체에요. 우리의 본 모습을 표현하자면… 우주에 퍼져있는 입자의 시스템이라고 표현하면 좋을까요? 우주에 퍼져있는 수많은 입자들의 상호작용을 통해 우리의 의식이 발현하죠.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자면, 우주에 퍼져있는 의식이 있는 구름 같은 존재라고 할까요.”

  나는 그의 말을 절반 정도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내게 뭘 원하는 거지?”

  “우리는 아주 먼 거리를 여행해왔습니다. 당신이, 인간들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먼 거리를요. 그러면서 저는 복잡한 의식 활동을 가진 생명들이 사는 여러 행성을 방문했죠. 거대한 컴퓨터에 자신들의 의식을 업로드해서 만족해하는 문명도 있었고, 부족한 자원을 두고 끊임없이 전쟁을 벌이는 호전적인 문명도 있었죠. 별의 모든 에너지를 활용하는 수준에 이른 초고도의 문명도 만났죠. 우리는 각각의 행성을 돌며 여러 지적인 개체를 만나 우리에 편입시켰습니다. 우리의 일부가 되었죠. 우리는 입자 구름의 일부분이 되어서 서로 대화도 하고 각자 지적인 활동도 합니다. 우리는 모두 거대한 시스템의 일부분이 되어 우주를 여행하며 영생을 누리는 것에 만족하고 있죠. 우리는 선재 씨에게도 같은 제안을 하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나보고 너와 일부가 되라고? 내가 왜?”

  그는 빙긋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반대로, 그러지 않을 이유는 뭐죠? 선재 씨는 삶이 고달프지 않은가요? 매일매일 제대로 풀리지도 않는 수학 문제를 붙잡으면서, 더 쉬운 분야를 골라잡아 논문을 내고 졸업하는 동기들과 사회생활을 해서 돈을 벌고 있는 애인을 보고 있으면, 솔직히 이 삶을 탈출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던가요?”

  그가 한 말들은 내가 평상시에 나도 모르게 해왔던, 나조차도 무시하고 싶었던 생각들이었다. 그런 생각들이 들 때면 나는 스스로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이 부끄러워졌다. 그의 입에서 나의 숨겨왔던 생각들이 나오자 나는 말문이 막혔다.

  “우리와 하나가 된다면 함께 우주를 여행할 수 있어요. 별들 사이를 날아서 새로운 항성계를 탐험하고 다른 지적인 존재들을 얼마든지 많이 만날 수 있죠. 그걸 원하지 않는다면 우리 안에서 영원한 꿈을 꾸면서 더욱 만족한 삶을 살 수도 있어요. 우리들과 연극 놀이를 하며 노는 거죠. 당신이 좋아하는 지적인 활동을 얼마든지 할 수도 있죠. 그런 기회가 있는데 잡지 않을 이유가 있나요?”

  나는 그의 말에 제대로 반박할 수 없었다. 나는 당황해서 말을 돌렸다.

  “내가 너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면, 그러면 어떻게 되는 거지?”

  그는 비웃는 어조로 말했다.

  “무슨 수로 세상 사람들이 당신의 말을 믿어줄까요? 말했듯이, 내 모습은 당신에게만 보이고, 내 말도 당신에게만 들려요. 내 존재를 무슨 수로 사람들에게 증명할 거죠?”

  나는 말문이 막혔다. 그는 나를 보며 말했다.

  “당신은 상당히 고집이 센 인물이군요. 아주 좋아요. 만족스러워요. 우리에게는 시간이 많지 않아요. 당신에게는 딱 일주일만 할애하도록 정했어요. 당신을 만나고부터 사흘이 지났으니, 이제 나흘 남았네요.”


  “나흘 뒤에 뵙는 거죠?”

  나는 과외 학생과 수업을 마치고 나가며 어머님에게 물었다. 어머님은 미안하다는 얼굴로 대답했다.

  “아뇨, 죄송하지만 수업은 여기까지만 했으면 좋겠어요. 아이가 학원에 다니기로 해서요.”

  “아, 그렇군요. 나중에라도 혹시 필요한 일이 있으시면 전화 주세요.”

  나는 굉장히 아쉬웠지만 좋은 인상을 남기기 위해 웃으면서 인사했다.

  이미 밤이 내려와 거리는 어둑어둑해졌다. 용돈벌이가 또 하나 줄었구나, 나는 집으로 터덜터덜 걸어가며 생각했다. 자주 있는 일이었지만 그때마다 마음이 좋지 않았다. 대학원생으로서 받는 쥐꼬리만 한 월급으로는 생활을 이어 나가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부모님께도 손을 벌리기는 죄송스러웠다. 과외를 또 구하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다. 눈앞이 막막해졌다.

  그는 맞춰서 옆에서 나를 보며 내 걸음걸이에 맞춰서 걷고 있다. 나를 관찰하는 듯 호기심 가득한 눈에 비웃는 듯한 미소를 하고.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져서 그에게 먼저 말도 걸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나도 괴델이나 칸토어처럼 정신이 나가게 되는 중인 것일까?

  “너 혹시 나한테 돈도 줄 수 있어?”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근처에 있는 현금인출기를 가리켰다. 현금인출기에 가까이 다가가자 현금인출기가 이상한 소리를 냈다. 화면은 고장 난 것처럼 지지직거렸다. 윙 하고 돈을 마구 뱉어냈다. 나는 주변을 살피다가 황급히 돈을 꺼냈다. 세어보니 정확히 45만 원이었다. 나는 기쁜 마음에 근처 편의점으로 달려가 간식거리와 맥주를 샀다. 시원한 맥주를 들이켜니 속상했던 마음이 좀 가시는 것 같았다.

  나는 아쉬운 마음에 그에게 이야기했다.

  “이게 다야? 더 줄 수는 없어?”

  “더 줄 수도 있겠지만, 그건 어차피 원래 당신 돈이에요.”

  나는 그의 말에 어리둥절하다가 흠칫하여 스마트폰으로 계좌를 확인해봤다. 내 계좌에서 돈이 모조리 빠져나가 천 원 단위로만 남아있었다. 내가 들고 있는 45만 원이 내 전 재산이었던 것이다. 손에 들고 있는 고작 지폐 몇 장이 전 재산이라니, 시원한 마음은 온데간데없고 비참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화가 나서 그에게 소리쳤다.

  “내 돈을 달라고 한 게 아니잖아! 나를 속였어!”

  그는 비웃으면서 말했다.

  “우리는 남의 돈을 주겠다고 한 적이 없어요. 우리는 그저 당신에게 우리의 능력을 조금 보여줬을 뿐이에요. 우리가 왜 당신 좋아라고 그런 일을 하겠어요? 만에 하나 그러다가 당신이 지구의 삶에 만족해버려서 우리의 제안을 거절하기라도 한다면 어쩌겠어요? 그리고 그런 기록에 남고 추적당할지도 모르는 멍청한 일을 우리가 할 리가 없잖아요? 물론 한다고 해서 추적당할 리도 없지만요.”

  그의 말에 나는 현실을 부정하려고 했다.

  “아니야. 너는 사실 그런 능력이 없는 거지? 왜냐하면 너는 내 상상 속의 존재니까. 그리고 내가 지금 정신이 이상해져서 나 스스로 돈을 인출했는데, 망상에 갇혀서 이상한 걸 보고 있는 거야…….”

  “당신이 그런 식으로 자기 감각까지 의심하면서 우리를 믿지 않으려고 한다면, 우리가 뭘 더 해서 당신을 납득시킬 수 있는지 모르겠네요. 흠. 이런 건 어떨까요?”

  그는 손가락을 한 번 튕겼다. 딱 하는 소리와 함께, 카메라 플래시처럼 뭔가가 번쩍했다. 그러더니 시야가 점점 왜곡되어 세상의 모든 것이 축소되는 느낌이 들었다. 내 키가 주변의 자동차, 가로등, 건물보다 점점 커지고 있었다. 지구는 점점 더 작아져 저 멀리 지평선이 보이기 시작했다. 지평선은 그리고 점점 더 둥글어져 갔다. 멀리서 보면 지구는 더 이상 평평하지 않고 둥글어진다. 내 몸이 점점 더 커지고 지구가 점점 더 작아지고 있었다. 이제 내 키는 하늘만큼 커져서, 발아래가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별과 달이 점점 더 가까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지구 뒤편의 해가 고개를 내밀어 지구 반대편은 낮임을 당당하게 알리고 있었다.

  그리고 내 눈에는 일반적으로 사람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보이기 시작했다. 태양에서 뻗어져 나오는 여러 입자의 흐름. 형형색색의 입자들은 태양에서 출발해 지구의 자기장을 통과하지 못하고 비껴 나간다. 그 입자들 사이에서 나는 어렴풋이 그의 모습을 본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여기서 멈추지 않고 나는 계속 커진다. 이제 나는 태양계와 맞먹을 정도의 크기가 되었다. 이제 지구는 먼지만한 크기가 되었다. 그 태양마저도 점점 작아진다. 거대한 태양과 그 주위를 돌고 있는 행성들, 그들이 이제 두 손 안에 담긴다. 우주의 대부분은 얼핏 보기에는 빈 공간이다. 그러나 그 사이사이에도 입자가 있다. 모든 빈 공간 속에서도 빅뱅 태초의 흔적인 입자들은 끊임없이 진동하고 서로 충돌한다.

  우주는 점점 더 작아진다. 이제 별들 사이의 거리는 한 폭, 아니, 한 뼘에 들어온다. 우리은하가 한눈에 보인다. 그리고 저 멀리에 다른 은하들이 보인다. 그 은하들도 점점 더 가까워진다. 별들은 서로 뭉쳐져 더 이상 구분할 수가 없게 되었다. 온 우주가 한 아름에 들어오고, 지구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다는 빛마저 한데 뭉쳐져 작은 점이 된다. 그리고 그 점마저 점점 작아지더니, 사라진다. 그리고 남은 것은 완전한 암흑, 공허, 무의미.

  이 거대한 우주 앞에 모든 것은 무의미하다. 삶도, 생명도, 지구도 모든 것은 거대한 공허 앞에 무력해지고 무의미해진다. 나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칠흑 속에서 허우적거리지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너무나 어두운 나머지 내 팔조차도 있다는 것이 느껴지지 않는다. 아무것도 들리지도 않고 보이지도 않는다. 적막함 속에서 두근두근하는 심장 고동 소리와 위잉 하는 이명이 귀를 가득 채운다. 그 소리는 점점 왜곡되더니, 다른 소리로 바뀐다. 마치 사람들이 웅성웅성하는 소리처럼 들린다.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면서 나에게 웅성웅성 댄다. 웅성이는 소리 속에서 어렴풋이 말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재능도 없으면서 되지도 않는 것을 붙잡고 있네, 주변 사람들은 다 앞으로 나아가는데 혼자 멈춰 있네, 졸업은 언제 하려고 저러나, 웅웅웅. 귀를 막아도 소리가 막히지 않는다.

  점점 숨이 막혀 오더니, 나는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


  정신 차렸을 때는 이미 해가 중천이었다. 나는 내 작은 자취방 현관 앞에 엎어져있었다. 어떻게 집까지 돌아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반바지에는 온통 풀잎이 붙어있었고, 다리에는 긁힌 상처가 가득했다. 집에 와서 기절한 뒤에 그대로 엎어져 잠이 든 듯했다. 자고 일어나도 그 존재는 아직도 내 곁에 있었다. 나를 측은하다는 듯이 바라보면서.

  정신을 잃은 동안 교수님의 연락이 와있었다. 시간이 되는대로 미팅을 하면 좋겠으니 답장을 기다리겠다는 메일이었다. 교수님께 온 메일을 자느라고 읽지 못하다니, 나는 가슴이 철렁 했다. 다행히도 메일이 온지 얼마 되지 않았다. 나는 세수를 한 번 하고 지저분해진 옷을 새로 갈아입은 뒤 컴퓨터 앞에 앉았다. 교수님께 바로 미팅 진행할 수 있다고 답장을 보내자, 교수님은 곧바로 화상 미팅 참여 주소를 메일로 송부했다.

  미팅에 들어가자 교수님은 사뭇 진지하고 걱정스런 표정이었다. 교수님과 나는 간단하게 안부 인사를 나눴다. 잘 지내냐는 교수님의 질문에 나는 사무적으로 그렇다고 대답했다. 사실 잘 지내고 있지는 않지만 교수님에게 티를 내고 싶지 않았다. 교수님이 먼저 말을 꺼냈다.

  “어제 밤에 아카이브에 논문이 하나 올라왔는데 말이야.”

  항상 본론만 간결하게 말하던 교수님답지 않게 교수님은 말을 길게 끌었다.

  “우리가 풀던 문제랑 관련이 있는 논문이던데 혹시 확인해봤니?”

  “아뇨, 확인 못해봤습니다.”

  나는 자신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래, 어제 나온 논문이니까 못 봤을 수 있지. 혹시나 해서 물어봤다. 앞으로는 네가 연구를 해나가면서 아카이브에 올라오는 우리 연구 분야와 관련 있는 논문들도 계속 확인해봐야 할 거야.”

  나는 거의 들릴 듯 말 듯 하게 ‘네’ 하고 대답했다. 솔직히 내가 스스로 그렇게 해나갈 별로 자신이 들지 않았다.

  “이 논문을 같이 읽어보는 게 좋겠다. 메일로 보내줄게. 이 논문 내용이 말이야.”

  교수님은 계속 본론을 회피하면서 말을 길게 끌었다. 나는 불길한 기운을 느꼈다.

  “이 논문이 우리가 풀던 문제를 결론짓는 논문인 거 같아. 정확히는 다 읽어봐야 알겠지만, 개요만 읽어보니까 우리가 더 건드릴 수 있을 게 없을 수도 있겠다.”

  교수님의 말이 바로 와 닿지 않았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교수님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고 싶었던 것 같다.

  “이렇게 되면 우리가 다시 다른 문제를 찾든지 해야 할 것 같네. 이 분야에서 같은 문제를 연구하는 다른 연구자가 있는 줄 몰랐다. 보통은 이런 일은 잘 안 생기는데 운이 나쁘네.”

  교수님은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표정이었다. 교수님의 말을 듣고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몇 달 동안 매달려서 해결이 안 되던 문제가 다른 누군가에 의해 풀리다니. 별로 믿고 싶지가 않았다. 나는 교수님이 보내주신 파일을 열어서 개요와 목차를 확인했다.

  논문의 구조는 깔끔했고, 아이디어는 간단했다. 그 아이디어는 나도 아는 것이었다. ‘차수로 나눈 다음에 곱한다.’ 목차의 소제목만 봐도 각각의 절에서 어떤 논점을 이야기했는지, 또 어떤 난점을 확인했는지 본문을 읽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왜냐하면 몇 달 동안 내가 수많은 잘못된 아이디어로 지겹도록 해온 작업들이었기 때문이다. 간발의 차로 내가 정답을 놓쳤다는 것도 알 수 있었고, 몇 달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이 분야가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는 뜻이니까, 너무 안 좋게 생각하지는 말고. 저널에는 아직 발표가 안된 거니까 틀린 부분이 있을 수도 있고 말이야. 일단은 이 논문을 같이 읽어보는 거로 하자.”

  나는 “네, 교수님.”하고 작게 읊조렸다. 내색하고 싶지 않았지만, 내 기분을 감출만한 기운도 남아있지가 않았다. 수학자는 우주의 비밀을 밝혀내는 사람들이다. 새로운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것은 우주의 비밀이 또 한 꺼풀 벗겨졌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수학을 연구하는 나는 내 연구가 수포로 돌아갔다 하더라도 신나고 흥분되는 기분이 들어야 할 것 같았다. 수학자라면 응당 그래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자신이 증명하려고 노력하던 명제가 거짓이라는 것이 밝혀진다 하더라도. 그러나 나는 전혀 즐거운 기분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눈앞이 캄캄해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미팅이 끝나고 기운이 빠져 가만히 앉아있었다. 그는 여전히 나를 측은하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너 이렇게 될 거 알고 있었어?”

  그는 어깨를 으쓱 했다. 이 외계인이 설마 다른 사람에게 알려준 건 아닐까, 그런 의심이 내 안에서 싹 텄다. 그리고 한 편으로는, 이 외계인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내가 믿는다니, 내가 드디어 미쳤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이 외계인이 실재하는 것인지 아닌지 나는 확인할 방도가 없다. 고개를 들자 눈앞에 컴퓨터가 있었다. 아니면, 아마 있을 지도 모른다.

  나는 왜 진작 이 외계인에 대해서 검색해볼 생각을 하지 않았는지 자책하면서 검색창을 열었다. 그러나 무얼 검색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나는 그제야 이 외계인의 외형을 유심히 살피기 시작했다. 이 외계인이 나를 닮았다는 것을 그제야 알게 되었다.

  ‘나를 닮은 외계인’

  ‘외계인의 제안’

  ‘외계인이 내 돈을 훔쳤어요.’

  제대로 된 검색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결과의 대부분이 외계인에 대한 가설, 3류 SF 소설 같은 것들이었다. 당연한 결과였다. 사실 이런 멍청한 검색어를 입력하면서 나조차도 기대감을 가지지 않았다. 전략을 바꿔야 했다.

  나는 골똘히 생각하다가 그가 나에게 한 말을 떠올렸다. ‘우주에 퍼져있는 수많은 입자들의 상호작용을 통해 우리의 의식이 발현하죠.’ 어제 그가 내게 보여주었던 풍경에서, 태양에서 뻗어나가는 입자들 사이로 그의 모습을 언뜻 느꼈던 기억이 났다. 나는 최근에 있었던 우주 현상에 대해서 검색하기 시작했다. 관련 있어 보이는 여러 기사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지난 5일 간, 태양 활동 급격히 증가, 방송·통신 장애 대비 필요’

  ‘태양폭풍으로 인한 인공위성 일부 고장, 다행히 후속 피해는 없어…’

  ‘태양폭풍 최대 일주일까지 이어질 것이라 예측’

  나는 기사를 보고는 그를 추궁했다.

  “이거 너가 그런 거야?”

  하지만 그는 다시 어깨를 으쓱하고 말 뿐이었다.

  “그냥 우연의 일치일 뿐이에요.”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 그래봤자 내가 증명할 방법은 없겠지.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외계인이 나의 망상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증거를 찾자 위안을 얻었다. 내가 미치지는 않았다는 뜻이니까. 나는 마음이 좀 가벼워져서 괜스레 그에게 신세 한탄을 했다.

  “내가 연구를 계속 하는 게 맞을까?”

  그는 묵묵부답이었다. 하지만 나는 고민을 털어놓을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 마음의 큰 짐을 더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그가 대답을 하건 말건 계속 털어놓았다.

  “내가 하는 연구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어. 처음부터 길을 잘못 든 게 아닐까하는 기분이 들어. 나는 그냥 어려운 걸 하는 게 멋있어 보여서, 평범하고 쉬운 걸 하는 게 싫어서 선택한 건데, 그러지 말았어야 했나봐. 나는 내가 엄청 어려운 난제를 풀어낼 줄 알았는데,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걸 봐. 전혀 중요해보이지도, 어려워보이지도 않는 걸 하고 있는데, 그마저도 제대로 못하고 있어. 너는 우주에서 왔다며? 우주의 모든 비밀을 다 알겠지? 내가 하고 있는 게 중요한 걸까? 내가 이걸 계속 하는 게 맞을까?”

  그는 묵묵히 듣고 있다가 짧게 한 마디 했다.

  “선재 씨에게는 언제나 다른 선택지가 있어요.”

  다른 선택지, 아마 그를 따라가는 제안을 말하는 것이겠지. 하지만 그의 말은 다른 식으로 들리기도 했다. 언제나 다른 선택지는 있지. 내가 연구하고 싶지 않다면 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연구 같은 거 안 해도 할 수 있는 건 많을 거야. 연구를 안 한다면 뭘 할지 고민해보진 않았지만 말이다. 그리고 연구를 하고 싶다면 계속 해도 되는 것이다. 아무도 나한테 수학 연구를 하라고 시킨 건 아니니까. 그렇게 생각하니 그의 말이 괜히 위안이 됐다. 그의 말에서 위안을 얻는 상황이 웃겨서 나는 헛웃음이 났다.


  늦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고 있었다. 날씨가 선선해지고 솔바람이 불어왔다. 더위가 가시고 기분 좋은 날씨가 되자 마음도 좀 더 진정이 되는 것 같았다. 나는 기분 전환 겸 자주 가던 강가로 산책을 나왔다. 그가 여전히 나를 따라다녔지만 더 이상 개의치 않았다.

  강가에는 형형색색의 꽃이 피어나고 있었다. 데이지와 코스모스가 서서히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강가의 꽃밭은 학부생 시절에 지연과 연애하면서 자주 데이트 코스로 써먹던 곳이었다. 그 때를 추억하니 괜스레 눈물이 났다. 미래에 대한 아무런 걱정 없이 지낼 수 있었던 때였다.

  나는 다리 위로 올라가 강물을 내려다보았다. 새파란 강물이 넘실넘실 거렸다. 강물은 쓸쓸하면서 포근했다. 생각을 비우고 풍경을 바라보고 있자니 환기가 되었고, 좀 더 객관적으로 상황을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 같았다.

  만약 이 외계인이 실제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면, 나는 이 외계인을 전혀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만약 이 외계인이 진짜라고 하더라도, 이 외계인의 말에 따르면, 이 외계인은 일주일까지만 나를 괴롭힐 참이었다. 그리고 오늘이 마지막 날이었다. 오늘만 참으면 이 외계인은 사라져야 할 터였다. 내가 제안을 거절하기만 한다면……. 저들을 따라오라는 터무니없는 제안. 이 외계인의 제안을 나는 당연히 거절해야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속에 ‘왜?’라는 의문이 고개를 들었다. 졸업에 대한 압박감, 재능에 대한 의심, 경제적인 문제, 지연과의 관계, 내가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문제가 너무 많았다. 만약 외계인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런 문제에서 다 벗어나서 그냥 갑자기 사라져버릴 수 있다면…….

  나는 여기까지 생각하다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말도 안 되는 생각이라고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주머니에서 전화가 울렸다. 지연으로부터 온 전화였다. 나는 전화를 받아야 하나 고민했다. 하지만 오래 고민하면 전화는 끊어지게 될 것이었다. 나는 마음을 굳게 먹고 전화를 받았다.

  “오빠, 어떻게 전화 한 통 없어?”

  건너편에서 앙칼지면서 물기가 가득한 지연의 목소리가 전해졌다.

  “지연아, 미안해.”

  “뭐가 미안한데. 미안하면 사람이 전화를 해서 사과를 해야지.”

  지연은 결국 말하다 말고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지연이 우는 소리에 당황해서 황급히 대답했다.

  “내 상태가 너무 안 좋아서, 너한테 걱정 끼치고 부담이 될까봐…….”

  지연은 한참을 엉엉 울었다. 그러다가 진정이 되었는지 훌쩍이면서 말을 이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오빠가 나한테 왜 부담이 돼. 힘든 일이 있으면 당연히 나한테 제일 먼저 얘기해야지.”

  나는 어디서부터 말을 꺼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일단 지연에게 말하기로 마음먹은 이상 어떻게든 이야기를 해야 했다. 아무도 볼 수 없는 외계인이 내게 보인다고 이야기를 해야 하나? 하지만 그렇게 이야기를 시작하기엔 너무나 터무니없고, 지연이 믿어줄 것 같지가 않았다. 나는 고민하다가 힘겹게 입을 뗐다.

  “만약 누군가가 날 이 세상에서 갑자기 사라지게 해줄 수 있다고 제안한다면 어떨 거 같아?”

  잠깐 정적이 흘렀다. 아마 지연은 내 말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것 같았다.

  “오빠, 그게 무슨 소리야. 오빠가 왜 사라져. 혹시 내가 저번에 화낸 거 때문에 그러는 거야? 내가 미안해. 나는 오빠가 마음이 식어서 나한테 연락을 안 하는 줄 알았어. 오빠가 그렇게 힘든 줄 몰랐어.”

  “지연아, 오해하지 말고. 난 괜찮아.”

  “오빠 졸업하고 나면 회사 취직하든지 아니면 오빠 하고 싶은 공부 더 할 수 있잖아. 오빠 재능 있는 사람이니까 졸업도 금  방 할 거고. 그런 사람이 갑자기 왜 사라져.”

  내가 졸업을 할 수 있을까, 라고 머릿속에 생각이 스쳐지나갔지만 지연에게 말로 할 수 없었다. 내가 아무 말이 없이 가만히 있자 지연이 말을 이었다.

  “나는 오빠가 일부로 나한테 연락 안하고 피하는 줄 알았어. 오빠가 그렇게 힘든 줄 몰랐어. 미안해.”

  “아냐, 괜찮아. 제 때 이야기 안한 내 잘못이지.”

  “오빠, 내가 병원 가보라고 얘기했었는데 병원은 갔어?”

  맞다, 병원. 지연은 항상 나에게 정신과에서 상담을 받아보라고, 대학원생이 우울증 같은 문제를 자주 겪는다고 이야기하곤 했다. 나는 항상 설마 하는 생각으로 건성으로 ‘알겠어.’ 라고 대답하며 상황을 모면했던 기억이 난다.

  “아직 안 가봤네…….” 나는 민망해서 말끝을 흐렸다.

  “내가 병원 가보라고 몇 번을 말했잖아. 내일 내가 내려갈 테니까 같이 병원 가보자.”

  “내일? 너 회사 가야되잖아. 나도 좀 바쁘고…….”

  “알겠어. 그러면 이번 주 주말에 내려갈게. 같이 병원 가보자.”

  “알았어. 이번 주말에.”

  나는 달력을 꺼내서 이번 주 주말에 동그라미를 쳤다. 내가 내일 그의 제안을 거절하기만 한다면 주말에 지연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몇 분 있으면 결정할 시간이에요.”

  “결정이라는 건 어떻게 하는 거지?”

  “당신이 특별히 뭔가를 할 필요는 없어요. 어차피 당신의 마음은 우리가 훤히 들여다볼 수 있으니까요. 시간이 되면 우리가 당신의 마음이 어느 방향으로 기울어져있는지 볼 겁니다.”

  내가 그냥 거절하겠다고 말만 해서는 해결되는 건 아니구나. 하지만 어쨌든 나는 제안을 거절하겠어, 그렇게 나는 속으로 되뇌었다. 끊임없이 한 편으로 ‘왜?’라는 의문들이 고개를 들었지만, 나는 그것들을 모른 척하려고 애썼다.

시계를 봤지만 아직 시간이 더 남아있었다. 일분일초가 참 길게 느껴졌다. 나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 그에게 질문했다.

  “왜 하필 나지?”

  그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우리가 아무나 데려가는 것은 아니에요. 자신의 삶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사람은 널리고 널렸죠.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일부가 될 만한 사람을 선택해야 해요. 의식 활동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굉장히 중요해요. 우리가 단순히 취미로 선재 씨에게 이런 제안을 하는 건 아니에요. 의식 활동이라는 건 우리에게 우주를 여행하기 위한 연료이고, 우리의 삶을 이어나가기 위한 필수 요소예요. 지구 생명체의 산소 같은 것이란 말이죠. 그래서 우리는 고차원적이고 복잡한 사고 활동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선택해야 해요. 그러면서도 우리의 제안을 수락할만한 상황에 놓여있는 사람이어야 하고요. 그래서 우리는 선재 씨를 골랐어요. 선재 씨의 재능을 보세요. 그 재능을 그렇게 썩히고 있는 게 스스로도 정말 안타깝지 않나요? 선재 씨는 우연히 우리의 제안을 받은 게 아니라 선택 받은 겁니다.”

  그는 잠깐 뜸을 들인 뒤 이어서 말했다.

  “자, 시간이 된 것 같군요. 선재 씨의 마음을 한 번 들여다볼까요?”

  그의 눈이 시퍼렇게 빛난다.


  시간이 흘러 선재의 졸업식이 되었다. 학사모를 쓴 선재는 당당히 연단 위로 걸어 나가 졸업장을 받았다. 선재는 과거를 회상했다. 매우 힘든 대학원 생활이었다. 어려운 분야를 선택한 탓에 동기들보다 논문이 늦게, 그리고 적게 나와 비교가 되기도 했다. 중간에 운 나쁘게도 박사 논문 주제가 바뀌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어쨌든 선재는 그의 박사 논문을 훌륭하게 완성했고, 학계의 인정을 받았다. 선재가 앞으로 학문을 이어나가게 될지, 아니면 취업을 선택하게 될지는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그러나 큰 고비를 넘겼으니 이제는 맘 편하게 선재가 앞으로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하며 될 터였다.

  선재는 연단에 서서 앞에 서있는 수많은 동문들을 쳐다보았다. 순간 동문들의 눈에서 새파란 무언가가 스쳐 지나가는 듯이 보였다. 그리고 선재의 눈동자에도 새파란 빛이 잠깐 비쳐 보이는 듯했다. 선재의 얼굴, 동문들의 얼굴, 연단과 건물, 모두 비현실적인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아무도 그런 건 신경 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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