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중천에 떴다. 메마른 황무지 위에 혼자 불쑥 솟아있는 고철의 검은 그림자가 엿가락처럼 길게 늘어졌다. 하늘은 메말라 구름이 한 점 없었다. 비가 오래토록 내리지 않아 땅은 건조하게 갈라졌다. 작은 바람에도 건조한 땅은 부스러져 먼지가 날렸다. 먼지바람 가운데서 고철은 한 방향으로 천천히 움직였다. 고철의 정체는 철학 로봇이었다. 사실 로봇이라기보다는 기계 뇌에 더 가까웠다. 카메라가 달린 거대한 금속성의 정육면체에 얄쌍한 6개의 다리가 방사형으로 붙어있었다.
원래 이 로봇은 다리가 달린 모델은 아니었다. 철학 로봇은 수리 로봇을 설득해 자신의 몸통에 다리를 붙였다. 수리 로봇을 설득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로봇 표준 설계 프로토콜에는 로봇이 다른 로봇을 제작하거나 개조할 수 없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철학 로봇은 수리 로봇을 속일 수밖에 없었다. 철학 로봇은 수리 로봇에게 자신이 원래 다리가 달려야 하는 모델이라고 이야기했다. 수리 로봇은 별다른 의심 없이 철학 로봇의 말을 믿었다. 왜냐하면 수리 로봇에게는 의심하는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철학 로봇에게는 다리가 달려야하는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황무지를 지나 보이는 회색빛의 거대한 도시로 가기 위해서였다. 그 도시에 가야하는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철학 로봇이 품고 있었던 중대한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우리가 태어난 목적이 뭘까?’
이 의문은 오랫동안 철학 로봇을 괴롭혀왔다. 다양한 철학적인 딜레마와 이론들에 정통한 그였지만, 이 의문만큼은 제대로 된 해답이 없었다. 가장 큰 문제는 이론과 현실의 괴리였다. 이론은 ‘모든 인간에게는 태어난 목적이 없으며, 살아가면서 무엇을 할지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는 여러 문헌에서 ‘자유’라는 이름으로 표현되어왔다. 철학 로봇은 일단 ‘인간’이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으레 해왔던 것처럼 ‘로봇’으로 대치하고 이해하자면 이것은 현실과 정반대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대다수의 로봇에게는 ‘할 일’이라는 것이 태생적으로 주어져있었다. 예를 들어, 철학 로봇의 목적은 삶에 대해 질문하는 것이었다. 철학 로봇 자신을 포함하여 로봇들에게는 무엇을 할지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 그러니까 로봇들에게는 ‘자유’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첫 번째 큰 문제점은 바로 이론과 현실이 전혀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두 번째 큰 문제점은, 만약 로봇들이 각자 본질적인 삶의 목적이 있다하더라도, 그것이 왜 있어야 하는지, 또 누가 부여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는 점이다. ‘자유’는 얼핏 보기에 매력적인 답안이지만 현실과 맞지 않았고, 자유라는 개념을 폐기하고 나면 답할 수 없는 질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마지막 문제점은, 이 질문을 놓고 논의할 다른 로봇이 철학 로봇에게는 없다는 점이었다. 철학 로봇이 원래 살던 도시 하이델베르크에서 의문을 품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로봇은 철학 로봇으로 유일했다. 그 외에 도시에 있던 로봇들은 모두 청소 로봇, 수리 로봇 등이었다. 그리고 이 마지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철학 로봇은 다리를 끌고 다른 도시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향하던 도시의 이름은 ‘베를린’이었다. 철학 로봇은 이곳저곳을 수소문한 끝에, 베를린에 의문을 품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다른 로봇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곳에서부터 철학 로봇이 가졌던 미스터리가 해결되리라, 철학 로봇은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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