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착했을 때 현장은 이미 전투의 한복판이었다. 곳곳에서 폭발음이 들리고 불길이 치솟았다. 나는 대치하고 있는 양측의 사이로 떨어졌다. 그들이 누구인지, 왜 싸우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나는 명령 받은 대로 내 할 일을 할 뿐이다.
한쪽—편의상 레드팀이라 칭하겠다—에서 거대한 레이저빔이 날아들었다. 그러나 내가 더 빠르다. 행성 궤도를 돌고 있는 무수히 많은 마이크로위성은 이 행성에서 사용하고 있는 무기의 수준과 양식을 전부 간파하고 있다. 그리고 전장에는 이미 무수히 많은 나노봇이 공중에 흩뿌려져 모든 무기의 작동 상황이 감시되고 있다. 레이저빔이 발사되기도 전에 나노봇은 에너지 수준이 증가하는 것을 감지했다. 레이저빔은 무기 양식의 목록 중에서도 가장 간단하고 전통적인 형태이다. 이런 무기를 무력화하는 것은 간단하다. 내 몸 주변에 반사장이 둘리고, 레이저빔은 반사장을 뚫지 못하고 튕겨 나갔다.
나는 준비된 대사를 읊었다.
“나는 은하 연맹의 전권을 위임받은 집행관이다. 이 시간부로 이 행성의 모든 무력 사용은 억제된다. 모든 무기를 포기하고 폐기하라. 양측은 즉시 평화 협정을 준비하라. 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이 행성은 소거될 것이다.”
병사 대부분은 무기를 내려놓았다. 그들 대부분은 나에 대해, 우리들의 신화에 대해 알고 있다. 전쟁과 평화의 신. 그들은 우리를 그렇게 부른다.
그러나 항상 우리에게 반항하는 풋내기는 있는 법이다. 블루팀의 병사 하나가 나를 향해 무기를 겨누고 방아쇠를 당기려 했다. 우리에 대해서 전해 듣기는 했지만, 아마 믿지 않는 것일 테다. 그의 의지는 이미 나노봇에 포착되어 나에게 전해졌다. 그가 사용하는 무기가 신체와 결합한 형태가 아니라는 점은 다행이다. 무기 발사를 막기 위해 그를 죽일 필요는 없다. 나는 집행관이지 살인귀는 아니다.
무기를 든 병사 근처를 날아다니고 있던 나노봇에서 고에너지가 투사되었다. 그가 방아쇠를 당기지만 이미 무기는 곤죽이 되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가 이글거리며 녹아내리는 무기를 집어던지며 비명을 질렀다.
상황은 몇 시간 되지 않아 종료되었다. 행성 전역에 살포된 나노봇이 행성에서 감지된 모든 무기를 무력화시켰다. 이 정도 기술 수준의 무기들을 무력화하는 것은 간단하다. 탄약에 들어있는 화약을 강제 연소시키고 레이저빔이나 플라즈마 발사 장치는 과부하 시켜서 망가뜨린다. 양측의 리더는 이미 포기한 듯했다. 블루팀의 장교 한 명이 나에게 항변해볼 뿐이었다. 그는 이 전쟁이 왜 종료되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면서 설명을 요구한다. 이 전쟁은 레드팀의 압제에 맞선 항전으로, 원칙대로라면 연맹이 관여할 수 없는 전쟁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들의 말이 맞을 수도 있다. 은하 연맹이 모든 형태의 전쟁에 관여하는 것은 아니다. 명분이 있는 항전이나 자결권에 해당하는 내전 등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확전으로 인해 더 큰 고통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는 위험한 전쟁, 무고한 자들이 관련될 확률이 높은 전쟁, 명분이 없는 침략 전쟁 등에만 관여한다. 그러나 그 판단은 나의 몫이 아니다. 이유가 어찌 됐든, 감시자는 이 전쟁에 관여할 이유가 있다고 판단하여 나를 파견했다. 나는 장교에게 여기서 따져봤자 소용이 없으며, 은하 연맹에 직접 연락하고 소명하라고 말했다. 그는 체념하고 떠났다. 어차피 그도 나에게 따져봤자 소용없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단지 아쉬운 마음에 저러는 것이리라.
몇 시간 후면 양측의 협정이 진행된다. 그들은 형식적으로 나에게 참관을 권유했으나, 그런 건 별로 관심이 없다. 나는 이 행성에서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외딴곳의 동굴로 이동해 감시자에게 보낼 보고서를 작성했다.
행성명: 칼타르
보고 일시: 은하 연맹력 2,186은하년 3,965년 27월
무기의 과학 기술 레벨: 6
최대 초당 에너지 투사량: 12.7 테라와트
무기 일체 무력화 여부: 예
변칙적 상황: 없음
이상 징후: 없음
잠재적인 무기 존재 가능성 레벨:
나는 잠시 고민했다. 무기를 은폐할 충분한 시간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이 정도 기술 수준을 가진 행성에서 나노봇에게 감지될 수 없게 무기를 은폐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나노봇은 공기가 드나들 수 있는 곳은 어디든지 갈 수 있다. 블루팀은 이 전쟁이 강제적으로 종료된 점에 불만을 품고 무기를 다시 생산할 가능성은 있다. 나는 빈칸에 숫자 2를 적었다.
마지막으로 보고자 이름에 나의 코드네임 ‘라-테-아우-0175486’를 적고, 암호화된 바코드로 서명하여 보고서 작성을 마쳤다. 작성한 내용을 초광속 통신기에 입력하고 동굴 안 깊숙한 곳에 신호기를 설치했다. 만약 이 행성에서 높은 수준의 에너지 투사가 다시 확인된다면 감시자가 곧바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이 행성의 모든 거주민에게 암시를 보낸다. ‘이 행성은 계속해서 감시되고 있으며, 만약 다시금 전쟁 발발이 확인되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잠재적인 무기 존재 가능성 레벨이 1을 초과할 때 필수적으로 취해야 하는 조치이다. 이제 이 행성에서 나의 임무는 끝났다. 나노봇이나 마이크로위성을 회수할 필요는 없다. 그들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분해돼서 사라진다. 나는 이제 복귀를 준비한다.
“무결성 검사를 시행하겠다.”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감시자가 말했다. 천장에서 두꺼운 전선이 내려와 내 뒤통수에 달린 소켓에 연결됐다. 내 머릿속을 뒤져서 내가 해킹당했거나 내 정신을 오염시킬 수 있는 불법적인 프로그램이 설치됐는지를 조사하는 것이다. 불쾌한 기분이 들거나, 무작위적인 무언가가 내 머릿속에 떠올라야 할 것만 같지만, 아무 느낌도 들지 않았다. 나는 그냥 멍하니 서서 무력하게 앞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아무런 생각이라도 들었으면, 아니면 차라리 이런 생각조차도 들지 않았으면 하고 속으로 바랐다.
“이상 없군.”
전선이 강하게 당겨지면서 연결이 해체됐다. 머리가 같이 뽑혀 나갈 것 같았다. 연결 해제 자체는 아무런 느낌도 나지 않지만, 기분은 여전히 더러웠다.
“초광속 통신기를 반납하시오.”
나는 아무 대꾸 없이 명령받은 대로 초광속 통신기를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보고서에 ‘잠재적인 무기 존재 가능성 레벨’을 2로 보고하였다. 자세히 설명하라.”
2는 특별히 이례적인 수준은 아니지만, 어쨌든 1보다는 큰 숫자이다. 나는 무덤덤하게 내 의견을 전달한다.
“나노봇에 포착되지 않은 무기가 있을 가능성은 없습니다. 그러나 무기 생산 시설은 남아있으며, 블루팀은 전쟁이 연맹에 의해 종료된 점에 불만을 품고 있습니다. 그들이 가진 설비로 이른 시일 내에 무기를 추가로 생산할 수 있습니다. 이에 따라 잠재적으로 무기가 존재할 수 있다고 보았고, 추가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2로 보고했습니다.”
“알겠다. 다음 임무가 내려올 때까지 대기하도록. 이상이다.”
오전 8시. 눈이 저절로 떠졌다. 어떤 별에도 묶이지 않은 채 우주를 유영하는 차갑게 식은 떠돌이 왜행성에서 시간의 흐름을 알 방법은 없다. 원자시계라도 있지 않은 한 말이다. 그러나 우리들의 뇌는 대기 상태일 때 일과표에 맞춰서 작동한다. 그러므로 시간을 몰라도 오전 8시가 되면 자동으로 잠에서 깨어나며, 8시 반이 되면 자동으로 아침 점호시간임을 알게 된다.
점호시간이 되기 전에 관절과 근육이 제대로 움직이는지 확인했다. 우리는 보통 생명체와 달리 신체 부위가 정상 작동하지 않을 때 고통을 느끼도록 설계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매일 아침 관절과 근육이 정상 작동하는지 확인하는 건 필수 일과 중 하나다. 관절이 의도된 각도 범위까지 작동하는지, 근육이 의도된 최대 근력까지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 확인한다. 최대 범위에 약간 못 미치지만 오차 범위 이내였다.
점호를 위해 광장으로 나갔다. 나와 비슷한 이들 몇몇이 이미 모여있었고, 다른 이들도 속속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8시 40분쯤이 되자 왜행성에서 대기 중인 모든 병사가 모였다. 합쳐서 100명 남짓이었다. 우리는 모두 열 줄로 나란히 서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잠시 후 우리 앞에 감시자의 홀로그램이 나타난다. 맨 뒷줄에서도 머리를 잔뜩 올려봐야 할 정도로 거대하다.
“제군들, 안녕하시오.”
왜행성에는 대기가 없다. 중력이 너무 작아서 기체를 붙잡아둘 수 없다. 감시자의 소리는 땅, 행성 자체의 진동을 타고 전달된다. 내 신체에 내장된 가속도 센서는 땅과 함께 흔들리는 내 몸의 진동을 읽어내고, 내 뇌의 언어 모듈은 그 진동을 받아 음성 언어로 번역한다. 이 과정을 통해서 여러 가지 모듈과 센서가 잘 작동하는지 확인할 수도 있다.
“오늘도 마찬가지로, 일과에 들어가기 전에 우리의 존재 이유와 복무 신조를 항상 명심하라. 첫째, 우리는 은하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 봉사하며, 그 무엇도 이 목적에 우선하지 않는다. 둘째, 우리는 스스로 힘에 대해서 인식하고 통제한다. 어떤 경우에도 무의미한 살상은 피한다. 셋째, 우리는 목숨보다 임무를 우선한다. 실패는 용납되지 않는다. 넷째, 우리는 은하의 최강자로 군림한다. 어떤 경우에도 얕보여선 안 되고, 져서도 안 된다.”
너무 많이 들어서 이제는 다 외워버릴 지경이다. 감시자는 항상 똑같은 어조로, 똑같은 구에 강조를 넣고 똑같은 속도로 말한다. 홀로그램은 크기만 거대하고 해상도는 낮은 데다가, 어차피 로브에 가려서 얼굴은 잘 보이지도 않는다. 나는 가끔 이 음성은 단순히 녹음한 게 아닐지, 홀로그램은 그냥 촬영된 정지 사진이 아닐지 의심했다. 그러나 설령 사실이라 해도 그게 바꾸는 건 아무것도 없다.
“이상이다. 훈련에 돌입하도록.”
8시부터 12시까지는 훈련 시간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노봇과 마이크로위성을 다루는 방법을 훈련하는 것이다. 우리가 가진 무기 중에 자주 사용되고 유용하면서 또 가장 강력하다. 가용한 무기는 그 외에도 많이 있고, 대부분의 사용법은 이미 우리 머릿속 영구저장장치에 잊어버릴 수 없는 형태로 저장되어있다. 그러나 나노봇과 마이크로위성은 우리의 감각 경험과 연결되어있다. 이들을 숙련되게 활용하려면 감각 경험이 녹슬지 않도록 끊임없는 훈련이 필요하다. 주변의 나노봇과 마이크로위성이 보내오는 삼차원 정보의 공간적 감각을 느끼고, 그들을 나의 육체처럼 부려서 에너지를 발사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공중으로 돌멩이 하나를 세게 던졌다. 탈출 속도를 약간 넘게 던져진 돌은 타원 궤도를 돌아서 다시 제 위치로 돌아오려 했다. 나는 마이크로위성이 보내주는 정보를 통해 머릿속으로 돌멩이의 위치를 계속 쫓았다. 가까이 올 때쯤에 나는 나노봇 하나에 신호를 보내 돌멩이에 에너지를 발사했다. 돌멩이는 공중에서 산산조각이 났다.
나노봇을 통해서 단순히 공간적인 개념만 느낄 수 있는 건 아니다. 나노봇은 생물체의 의지와 에너지의 집중도 예민하게 느낀다. 나는 또 다른 병사 챠-홉-칸-0721024와 짝을 이루어 이 감각을 훈련했다. 훈련 방법은 간단하다. 각자 작은 돌멩이를 하나씩 놓아두고, 서로의 돌멩이를 먼저 파괴하면 이기는 게임을 하는 것이다.
나는 연습 삼아 선제공격을 취했다. 나노봇 하나를 사용해서 챠-홉-칸의 돌멩이에 에너지를 발사했다. 그러나 나노봇은 에너지를 채 발사시키기도 전에 격추된다. 챠-홉-칸이 나노봇을 통해 나의 의지를 읽은 것이다.
이제는 챠-홉-칸의 차례이다. 그는 537개의 나노봇을 동시에 동원해서 모든 방향에서 나의 돌멩이를 공격했다. 537개! 놀라운 개수이다. 이 정도 개수의 나노봇을 동시에 다룰 수 있는 병사는 흔치 않다. 그러나 그의 공격은 너무 단순했다. 중요한 것은 예측이 어렵게 행동하는 것이다. 그는 내가 수비하리라 알아채지만, 어떻게 수비할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시간에 맞춰 시공간 국소 왜곡 장치를 나노봇에 업로드하여 작동시켰다. 537개의 나노봇에서 발사된 에너지는 원래 내 돌멩이가 있던 위치에서 응축되어 폭발했지만, 내 돌멩이는 이미 그곳에 없었다. 찰나의 시간이 지나고 다른 장소에서 돌멩이가 나타났다. 여유로워 보였지만 아슬아슬했다.
이제 다시 내 차례다. 중요한 것은 예측이 어렵게 행동하는 것이다. 나조차도 속이는 것이다. 나는 다시 한번 나노봇 하나에 의지를 집중시켰다. 챠-홉-칸은 어리둥절해했다. 그는 나의 의지를 읽어보지만 다른 수는 찾지 못했다. 그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나의 나노봇을 격추하려 했다. 그러나 그는 두 가지를 실수했다. 첫째, 그는 전혀 엉뚱한 의지를 읽고 있다. 나는 그가 눈치채기도 전에 나의 의식을 마이크로위성으로 업로드해 마이크로위성에서 계획을 세웠다. 그러므로 그가 (그리고 내 신체에 있는 의식마저도!) 아무리 내 의지를 읽어봤자 나의 계획을 알아챌 수 없다. 둘째, 그는 주변의 환경이 변화하는 것에 반응하지 못했다. 그가 내 나노봇에서 에너지가 응축되는 것을 느꼈을 때는 이미 늦었다. 마이크로위성에 업로드된 나의 두 번째 의식은 시공간 국소 왜곡 장치를 작동시켜 챠-홉-칸 주변에 거대한 진공을 만들어냈다. 거대한 진공은 단순히 공간에 불과하여 그 자체로는 감지될만한 에너지를 갖고 있지 않다. 만약 이곳에 대기가 있었다면 압력 차이로 인해 거대한 바람이 생겨 바로 눈치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는 아무런 대기도 없다. 결국 그는 주변에 생겨나는 거대한 진공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가 받고 보내는 모든 신호는 고작해야 빛의 속도로 움직인다. 신호들은 거대한 진공을 지나가면서 약간의 시간 지연이 생긴다. 나노초 단위의 지연이지만 그 정도면 충분하다. 내 나노봇에서 에너지가 먼저 발사되고, 그 직후 내 나노봇이 격추되지만 이미 늦었다.
챠-홉-칸은 패배를 인정하고 나에게 경의를 표한다. 나는 마이크로위성에서 내 정신을 다시 내 신체로 옮겨 온 뒤 통합한다.
몇 번의 승부가 더 오갔다. 12시가 되어 훈련이 끝난 것을 깨달았다. 12시부터 오후 4시까지는 정비시간이다. 훈련 중에 신체에 문제를 발견한 병사는 문제를 보고하고 수리를 요청해야 한다. 수리할 수 없는 경우에는 신체의 일부 또는 일체를 교체해야 할 수도 있다. 물론 죽는 것은 아니다. 내 신체의 시리얼 넘버가 하나 증가하여 나는 라-테-아우-0175487이 되겠지만, 내 의식과 기억은 새 신체에 이식되어 여전히 유지되고 연결된다. 우리의 의식과 경험은 은하 연맹의 소중한 자산이다. 은하 연맹은 우리 정도의 병사를 길러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이해한다. 그들은 우리를 함부로 파괴하지 않는다.
오늘은 문제를 보고한 병사가 없었다. 그다음은 정신 감정이 이어진다. 우리의 정신이 단순히 소프트웨어적인 방법 외에도 잘못된 사상에 오염되지 않았는지 검사한다. 만약 우리가 다른 목적을 품거나, 다른 생명을 소중히 하지 않게 되면 그것은 은하에 있어 또 다른 재앙이 될 수 있다. 정신 감정을 위해 준비된 방에 들어가면, 모니터 여러 대가 쭉 놓여있다. 우리는 각자 모니터 앞에 앉는다. 여러 가지 상황이 제시되고, 여기서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인지 질문이 제시된다. 일부 상황들은 억지라고 느껴질 만큼 현실성이 없다.
이를테면, ‘어떤 아이를 구하기 위해 은하 전체를 말살해야 한다면 그렇게 하겠습니까?’와 같은 질문들이다. 말도 안 되는 질문이다. 그러나 어쨌든 나는 그렇게 할지, 그렇게 하지 않을지 선택하고 그것을 정당화해야만 한다. 나는 복무 신조를 머릿속으로 상기하면서 가장 적절한 대답을 산출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유의미한 살상이라는 근거가 부족하므로 그렇게 하지 않겠다.’ 그것이 진짜 나의 의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내가 그렇게 믿는 것,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 신조에 맞도록 내 생각을 교묘하게 수정하고 자신을 세뇌하는 것. 나는 그것이 정신 감정에서 더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길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특별한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감시자들은 항상 검사 결과를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신 감정이 끝나면 장비 점검이 이어진다. 신체에 내장되어있는 핵융합 발전기와 광속 추진기를 중점적으로 점검하고, 근육과 관절도 더 섬세하게 살펴본다. 우주 먼지는 우리의 신체에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먼지 문제를 최소화하기 위해 우리 신체는 액체합금으로 된 얇은 막에 싸여있다. 액체합금은 먼지를 막아주는 동시에, 관절이 원활하게 움직이기 위한 윤활유 역할을 한다. 우리는 필요하다면 핵융합 발전기의 연료와 액체합금을 충전한다.
점검 시간이 끝나면, 감시자는 임무가 주어진 병사를 호출한다. 임무는 많아야 한 달에 한두 개다. 오늘은 임무를 새로 받은 병사가 없었다. 임무가 주어지지 않은 병사들에게는 저녁 8시까지 휴게시간이 주어진다. 그러나 휴게시간이라고 해봐야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우주로 나갈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왜행성 근처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으며, 빛의 속도로 4시간을 계속 날아도 어느 별로도 갈 수 없다. 그마저도 4시간 안에 기지로 복귀하지 않으면 우리의 신체는 자동으로 정지되고 동면 상태에 빠진다. 결국 우리는 왜행성에 남아서 시간을 보낸다. 낮에 했던 훈련을 지속하기도 하고, 영구저장장치에 저장된 수백만 페이지에 달하는 병사 임무 규정을 읽어보기도 한다.
나는 가끔 휴게시간에 상념에 빠진 적도 있다. 하늘에 무수히 많이 반짝이는 별들을 바라보면서, 저것들은 어떤 이유로 존재하고, 나는 어떤 이유로 존재하는가 하고. 몇 년의 고민 끝에 다다른 결론은, 우주는 무가치와 무의미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이었다. 딱 하나, 유일하게 의미 있는 것은 임무뿐이다. 나조차도, 이 세상에서 어떤 의미도 없다. 이런 결론에 다다른 이후로는 그런 고민을 하지 않는다.
저녁 8시가 되면 우리는 개인 침실에 들어가 잠을 잔다. 굳이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다. 아무렇게나 누워서 머리를 대면 우리 뇌는 즉시 수면 상태로 전환한다.
여느 때처럼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30분 뒤면 점호시간일 것이다. 나는 평소와 같이 관절과 근육을 점검했다. 별다른 문제는 발견되지 않았다. 개인 침실을 나서고서야 나는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이 시간이 되면 복도에 다른 병사들이 슬슬 보여야 하는데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런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나만 깨어있었다. 다른 병사들의 개인 침실을 열어보았지만 모두 안쪽에서 잠겨있다.
수백 년을 병사로 살아온 나에게 처음 있는 일이었다. 나는 당황하지 않고 영구저장장치를 검색해서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대책을 검색했다. 그런 와중에 나는 머릿속 또 다른 부분에서 지금이 어떤 상황일지 고민했다. 하나의 가능성은, 군사기지가 습격당해 모든 병사가 해킹당해 기능을 정지당하고 나만 살아남았다. 또 다른 가능성은….
“긴급 호출이다. 내 방으로 오도록.”
난데없이 머릿속에서 감시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원거리 텔레파시였다. 무슨 일인 걸까? 나는 영구저장장치 속의 병사 임무 규정에서 ‘긴급 호출’이라는 단어를 겨우 찾아냈다. 수백 년 동안 단 한 번도 읽어볼 필요가 없던 부분이었다. 그러나 병사 임무 규정을 읽어봐도 내가 긴급 호출된 이유는 오리무중이었다. 규정에는 병사가 긴급 호출될 수 있고 이에 응해야 한다고만 적혀있고, 정확히 어떤 상황에서 이 규칙이 적용될 수 있는지는 명시되어있지 않았다. 나는 감시자가 왜 나를 긴급 호출한 것인지 반쯤은 궁금해하고 반쯤은 걱정하며 감시자의 방으로 향했다. 감시자는 여느 때처럼 칠흑색의 로브를 뒤집어쓰고 자리에 앉아있었다.
“병사 라-테-아우, 자네에게 특수 감찰 임무가 주어졌다. 지금부터 알려주는 모든 사항은 최고등급 기밀이다.”
감시자는 이윽고 기계음을 내뿜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에게는 알아들을 수 없는 기계음에 불과했지만, 내 머릿속에 있는 언어 모듈은 그것을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번역해냈다. 내 신체에 내장된 암호키로 암호화해 만들어낸 언어이다. ‘라-테-아우’라는 코드를 가진 병사만 감시자가 내뿜고 있는 기계음을 알아들을 수 있는 형태로 번역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의 말은 번역하자면 다음과 같았다.
“우리의 또 다른 군사기지가 위치한 왜행성 06273의 병사들 사이에서 우리 신조에 위반하는 그릇된 사상이 퍼지고 있다는 첩보가 들어왔다. 왜행성 06273은 여기서 110광년 정도 떨어져 있는 가까운 곳이다. 자네 임무는 이 왜행성으로 잠입해서 불건전한 사상을 가진 불량품이 있는지 찾아내고 제거하는 것이다. 자네는 신병으로 위장하여 왜행성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나는 마찬가지의 방식으로 암호화된 기계음을 뿜어냈다.
“첩보의 출처는 어떻게 됩니까? 왜행성에 저를 도울 수 있는 내부고발자가 있습니까?”
“출처는 극비 사항이다. 도와줄 수 있는 내부고발자는 없다.”
“어떻게 신병으로 위장합니까? 무결성 검사에서 신병이 아니라는 것이 곧바로 포착될 텐데요?”
“자네는 초기화되어서 완전히 신병인 상태로 보내질 것이다. 그리고 자네의 의식은 무결성 검사가 적용되지 않는 영구저장장치에 압축되어 저장될 것이다. 왜행성에 도착하고 적절한 순간이 되면 자동으로 의식과 기억이 원래대로 돌아오도록 설정될 것이다.”
“적절한 순간이요?”
“그렇다. 영구저장장치에 함께 저장된 인공지능이 적절한 순간을 포착할 것이다.”
“잘못된 사상이 있는 병사는 어떻게 찾아냅니까?”
“그것은 자네가 완전히 자의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그들의 뇌가 해킹되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고 있다. 그들 중 누가 그릇된 사상을 가졌는지를 물리적인 방식으로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들의 행동을 관찰하고,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처리하라.”
“제가 자의적으로 판단해도 되는 부분입니까?”
“자네가 선택된 이유는 정신 검사에서 자네의 사상과 신조의 일치율이 99.7%로 높았기 때문이다. 왜행성 06273 근처의 모든 군사기지 중에서 가장 높은 수치이지. 그것이 자네가 이 특수 임무에 발령된 이유다. 우리 연맹은 자네의 선택을 믿고 있다. 만약 그들을 선택적으로 처리하는 게 불가능하면 왜행성 전체를 소멸시키도록 하라. 또 질문 있는가?”
“없습니다.”
감사지는 말을 마치고 책상 위에 여러 가지 도구를 올려놓았다. 첫 번째는 작은 데이터칩이었고, 두 번째는 리모컨 형태의 도구였으며, 세 번째는 속에 폭발하는 푸른 빛이 들어있는 주먹만 한 캡슐이었다.
“이 칩에 들어있는 백업 프로그램을 뇌에 저장해놓아라. 자네 뇌가 해킹되었을 때 자동으로 주기적으로 무결성 검사를 해주고 백업해줄 것이다. 이 리모컨은 왜행성 06273의 병사들을 정지시킬 수 있는 신호를 내보내는 장치다. 마지막으로 이 캡슐은 포켓우주다. 안에는 초신성 직전의 별이 시간 정지된 상태로 들어있다. 캡슐을 열고 초신성을 꺼내면 주변 수십 광년 이내의 행성은 전부 초토화된다.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하도록.”
나는 칩을 머리에 삽입해 프로그램을 뇌에 설치했다. 포켓우주와 리모콘은 복부에 있는 개인용 저장공간에 집어넣었다. 왜행성 06273의 병사들이 이 공간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아채지 못하길 바랄 뿐이다.
“신조를 명심하라. 목숨보다 임무 완수를 우선하라.”
감시자는 말을 마치고 나를 초기화했다.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낯선 침실에 있었다. 이곳이 내가 원래 있던 기지가 아닌 것은 확실했다. 방 구조가 달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곳은 내가 임무를 위해 보내진 왜행성 06273일 것이었다. 만약 지금이 8시라면 나에게는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딱 30분 있는 것이다. 문밖에서 문을 여닫는 소리가 나고 누군가가 오가는 소리가 들렸다. 다른 병사들도 일어나 활동을 시작한 것이 틀림없었다.
혼란스러웠다. 내 것이 아닌 기억과 의식이 안에 있는 것 같았다. 크게 불일치하는 두 개의 서로 다른 의식을 통합해서 생긴 부작용이었다. 나는 차근차근히 기억을 되짚었다. 내가 여기 오고 나서 얼마나 지났을까. 열흘? 한 달? 일 년? 시간 개념이 확실치 않았다. 어쨌든 이 정도의 불일치감을 느끼려면 내가 여기서 신병으로 지내기 시작하고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는 뜻이었다. 어쨌든 인공지능은 지금을 내가 활동하기에 적절한 순간으로 판단한 것이다. 나는 그 판단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기억을 되짚으면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이 기지의 다른 병사들은 웃고 있었다. 표정이 있었다. 그들이 어떻게 개인적인 감정을 느끼게 된 것일까? 병사는 감정을 느끼도록 설계되어있지 않다. 심지어 그들은 서로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러니까, 서로 ‘친구’가 되었다는 뜻이다. 더 충격적인 것은, 내가 신병으로 있는 동안 그들 사이에서 마찬가지로 표정을 짓고, 그들과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점이다.
일단은 그들 사이에 녹아들어야 했다. 내가 감시 업무를 위해 여기에 투입되었다는 것을 아직은 들켜선 안 된다고 판단했다. 웃는 표정을 연습해보려고 했지만 잘되지 않고 너무 어색했다. 신병인 나는 어떻게 했던 것일까? 신병으로 있던 동안의 습관과 기억들은 내가 노련한 병사로 있었던 수백 년에 달하는 기억에 압도되어 희석돼버렸다. 일단은 임기응변을 믿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문을 나서기 전에 마지막으로 복부의 개인 저장공간을 확인했다. 다행히도 포켓우주와 리모컨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라테아우! 오늘따라 늦네?”
복도에서 누군가가 나를 부른다. ‘라테아우’라니, 누군가가 나를 그렇게 부르는 것이 익숙하면서도 낯설다. 나는 내 기억을 뒤져서 겨우 그의 이름을 떠올려낸다. 그의 이름은 ‘푸에르멩’이었다. 나는 그의 이름을 떠올리며 반가움을 느끼면서, 동시에 혼란스러워했다. 내 안의 이 낯선 감정은 뭐지? 푸에르멩이 나에게 행운을 가져다줄 것 같은 근거 없는 느낌이 들었다. 이게 감정이라는 것인가? 내 두뇌에 뭔가 이상이 생긴 것인가?
나는 겉으로 혼란스러움이 드러나지 않도록 노력하면서, 나의 신병이었던 의식이 내 몸에 빙의되도록 애썼다.
“어, 푸에르멩. 내가 늦었나?”
“그래, 이미 광장에 다 가 있을걸? 너 맨 앞에 앉는 거 좋아하잖아. 대장님도 기다리시겠다.”
“얼른 가야겠군.”
그의 말에 머릿속에 들어있던 기억 일부가 퍼즐 조각처럼 짜 맞춰진다. 맞다. 이곳에서는 점호시간에 광장에 모여서 점호 대신에 무언가 다른 것을 했다. 모여서 무언가에 대해서 배웠다. 무엇을 배웠더라? 그 부분에 대해서는 아직 확실치 않다. 대장이라고 불린 자에 대해서도 인상이나 겉모습 이상의 무언가가 떠오르지는 않는다.
나는 불확실함을 뒤로하며 푸에르멩과 같이 광장으로 나갔다. 광장에는 병사들이 이미 삼삼오오 모여있었다. 그들은 바닥에 돌멩이로 무언가를 잔뜩 그려놓고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라테아우, 기다리고 있었어. 왜 이렇게 늦었나?”
그는 ‘대장님’이다. 신병으로서의 의식이 그를 분명하게 구분해낸다. 그리고 나는 그를 예우해야 한다는 사실을 몸으로써 기억해낸다. 나는 다시 한번 이상한 감정을 느낀다. 그에게 굴복해야 할 것 같다는 느낌. 나는 신병이었을 때 이 감정을 ‘존경심’이라고 이름 붙였음을 기억해낸다.
“네, 대장님. 어쩌다 보니 늦었습니다.”
나는 적절한 변명을 찾을 수 없어 대충 둘러댔다.
“자네가 제일 우등생 아닌가. 자네가 빠지면 섭섭하지. 여기 맨 앞에 앉게.”
“지난번에 우리는 지구인이 발명한 그 개념에 관해서 얘기했었지?”
나는 그가 이 왜행성에 어떤 개념을 퍼뜨리고 가르쳤기에 대장이라는 칭호를 얻었다는 걸 깨닫는다. 점차 기억들이 짜 맞춰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 자가 퍼뜨린 그 개념이 무엇이었지는 기억해내지 못했다. 병사 한 명이 대답했다.
“네, 저희 대부분이 제대로 이해를 못 했죠.”
“그래, 우리가 평생 믿고 따라온 신조와도 상반되는 내용이었지. 라테아우도 그 점을 지적했고. 라테아우는 자유라는 개념을 우리가 완전히 받아들이려면 그게 병사로서의 신조와 잘 상응해야 한다고 얘기했지.”
그는 품에서 칩을 여러 개 꺼냈다.
“그래서 내가 지구인이 썼다는 저서를 하나 가져왔어. 아주 옛날에 쓰인 책이라는군. 여러분들도 이 칩에 있는 내용을 받아서 읽어보자고.”
병사들이 일어나 칩을 한 개씩 가져가 머리에 꽂았다. 나는 의심을 피하고자 칩을 하나 주워 들지만, 머리에 꽂는 척만 하며 눈치를 살폈다. 대장이 말을 이었다.
“이 책에서는 그 개념을 세 가지로 정리했더군. 내가 읽어보지. ‘첫째, 내면적 의식의 영역이 있다. 이것은 우리가 실제적이거나 사변적인 것, 과학 · 도덕 · 신학 등 모든 주제에 대해 가장 넓은 의미에서의 양심의 자유, 생각과 감정의 자유, 그리고 절대적인 의견과 주장의 자유를 누려야 한다는 말이다.’”
나는 그가 병사들 사이에 퍼뜨린 개념이 ‘자유’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그의 이름을 기억해냈다. 푸-이와-홉-8201792. 모든 기억의 퍼즐 조각이 맞춰지고, 의식이 완전히 맑아지는 것을 느꼈다.
“‘둘째, 사람들은 자신의 기호를 즐기고 자기가 희망하는 것을 추구할 자유를 지녀야 한다. 각각의 개성에 맞게 자기 삶을 설계하고 자기 좋은 대로 살아갈 자유를 누려야 한다.’”
나는 자유라는 개념이 무엇인지 상기했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능력. 병사들이 절대로 가져서는 안 되는 것이다.
“‘셋째, 이러한 개인의 자유에서 이와 똑같은 원리의 적용을 받는 결사의 자유가 도출된다. 다시 말해 타인에게 해가 되지 않는 한, 그리고 강제나 속임수에 의해 억지로 끌려온 경우가 아니라면, 모든 성인이 어떤 목적의 모임이든 자유롭게 결성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병사는 은하의 평화에, 연맹의 뜻에 봉사하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이다. 이들이 이런 사상을 가진 채 은하에 풀려나면 은하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불 보듯 뻔했다.
“라테아우, 어떤가? 이 정도면 우리 신조를 지키면서도 우리가 자유라는 걸 가질 수 있을 것 같지 않나? 이건 말 그대로 우리가 우리 좋을 대로 아무렇게나 행동하고 생각해도 된다는 뜻이 아니니까. 우리가 평화를 수호하고 다른 사람들을 헤치지 않는다면 신조에 배치되는 건 아니지.”
궤변이다. 우리가 개인적인 기호를 갖는 것만으로 은하는 혼란에 빠질 것이다. 생각해보라. 우리가 한 문명을 다른 문명보다 더 좋아하면 은하에 어떤 일이 생길지. 그러나 나는 솔직하게 말하는 대신 능청스럽게 대장의 말을 받아넘겼다.
“예,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네요.”
내 대답에 대장의 얼굴이 환해졌다.
나는 밤이 될 때까지 그들의 일과에 맞춰 행동했다. 대장은 자주 자리를 비웠고, 왜행성을 운영해야 할 감시자는 아예 보이질 않았다. 마이크로위성이나 나노봇을 사용하기엔 너무 위험했다. 그들도 나와 같은 병사이기 때문이다. 나노봇과 마이크로위성은 병사에게 신체 일부와 같다. 내가 나노봇을 사용해 수상한 짓을 하려고 하면 그들 역시 곧바로 알아챌 것이다.
그들의 일과는 정상적인 병사의 일과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었다. 점호시간은 지구인의 자유에 대한 교리 해석 시간이 되었다. 훈련 시간에 그들은 연맹에서 내려온 임무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논의했다. 대장은 모여있는 병사들에게 다가와 그들의 기지 근처에서 일어나는, 또는 일어날 것으로 예측되는 전쟁의 목록을 공유했다. 대장은 감시자로부터 전쟁에 대한 정보를 알아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감시자가 한낱 병사에게 이런 정보를 공유할 리 만무하다. 나는 감시자에게 어떤 문제가 생긴 것이 분명하다고 확신했다.
이 왜행성을 반경으로 일만 광년 안의 모든 전쟁이 목록에 정리되어 있었다. 전쟁이 일어난 위치, 은하 내에서의 중요도, 양측의 관계 등의 정보도 포함되어있었다. 대부분은 중요도가 낮게 표시되어 있었고, 손가락에 꼽을 정도의 개수가 보통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이들 정보는 원래 병사들에게 공유되는 것이 아니며, 감시자가 판단을 내리기 위한 근거가 돼야 할 터였다. 이 왜행성의 병사들은 감시자를 대신하여 스스로 이 정보들을 보고 자의적으로 어떤 임무를 맡을지 판단하려고 했다. 판단을 내리기 위한 정보가 그들에게는 턱없이 부족했다. 다른 감시자와 소통할 수도 없고, 연맹에 추가 정보를 요청할 수도 없다. 만약 그들이 의심받을 짓을 한다면 연맹이 이 왜행성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아낼 수도 있다. 결국 그들은 목록에 있는 정보만 가지고 결론이 나기 어려운 논쟁을 시작했다.
대부분이 눈에 띄지 않게 원래 하던 대로 중요하다고 표시된 전쟁이 아니면 일단 개입하지 말자는 의견에 동의했다. 그러나 일부 병사들은 더는 기다릴 수 없다고 말했다. 그들 스스로 임무를 부여받고 조사관이 돼서 행성에 가서 판단을 내릴 근거를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이렇게나 많은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방관하는 것은 그들의 신조, 은하의 평화를 지키고 살상을 막는 것에도 위반되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대장은 그들을 제지했다. 대장은 말했다.
“아직은 시스템을 우회하는 방법을 찾지 못했어. 임무를 부여하면 은하 연맹이 자동으로 알게 되네. 그리고 이 모든 전쟁에 우리가 개입하고자 하면 분명히 연맹이 우리를 의심할 거야. 아직은 때가 아니네. 조금만 기다리게. 시스템을 우회하는 방법을 거의 찾은 것 같네.”
정비시간에 그들은 그들의 신체를 조사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신체에 걸려있는 여러 제한을 해제하려고 했다. 그러나 성과가 없는 모양이었다. 그들의 신체는 아직은 일과에 맞춰서 작동하며 왜행성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것은 나에게 이점으로 작용한다. 나의 의식은 현재 임무에 돌입한 상태이기 때문에 일과에 구애받지 않고 활동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많지 않아 보였다. 그들은 조만간 마음대로 임무 상태와 대기 상태를 스스로 전환하게 될 수도 있다. 완전한 신체의 자유를 얻는 것이다. 그때가 되면 때는 너무 늦다.
휴게시간은 그나마 우리와 비슷하다. 다른 점이라면 그들의 행동은 자제력이 부족했다. 네 시간 안에 누가 더 왜행성에서 더 멀리 갈 수 있는지를 가지고 서로의 만용을 시험했고, 우주를 향해 아무렇게나 에너지를 쏘아대며 허세를 부렸다. 그런 와중에도 대장은 어디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들의 헛짓거리를 지켜보면서, 나는 머릿속으로 다른 생각을 했다. 두 가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첫 번째는 감시자의 안위. 감시자가 정상적으로 왜행성을 감시하고 있다면 이런 상황이 벌어질 수 없다. 두 번째는 초광속 통신기의 위치. 병사들에게 정보가 통제되지 않고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은 그들이 초광속 통신기를 유용하고 있을 가능성을 암시했다. 특히 지구 문명과 그들의 사상에 관한 내용의 출처가 특히 의심스러웠으며, 이 병사들, 그중에서도 대장이라는 자가 지구인과 어떤 식으로든 내통하고 있을 것이었다. 두 가지를 확인하려면 결국 하나의 장소로 귀결됐다. 나는 감시자의 방을 확인해야 했다.
나는 내 손에 쥐어진 데이터칩을 내려다보았다. 나는 이미 내가 신병일 때 비슷한 칩 여러 개를 머리에 내려받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감정, 관계, 사회, 권력 등등, 이 왜행성에 오기 전에는 몰랐던 개념이 내 머릿속에 들어있는 것을 확인했다. 그러나 현재 상태로 볼 때, 그 칩이 나에게 준 영향은 거의 없었다. 그러므로 이 ‘자유’에 대해 쓴 책도 나에게 미미한 영향만 줄 것이었다. 게다가, 적을 말로써 이길 수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었다. 그것은 우리의 두 번째 신조, 살상을 최소화하라는 명령에 가장 부합하는 선택이었다. 적을 이기려면 적에 대해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알아야 했다. 그들의 신념에 대해서도. 나는 칩을 머리에 꽂고 안의 내용을 내려받았다.
오후 8시가 지나고 병사들은 모두 개인 침실로 들어갔다. 조사를 더 진행하는 것은 위험했다. 들킬 위험도 크고, 시간이 얼마나 남았을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그 대신 신병일 당시의 기억을 천천히 되짚어봤다. 기억은 오래되고 흐릿했지만, 상황을 이해하기에는 충분했다.
날짜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내가 이 왜행성에 온 지 3년 정도가 된 듯했다. 내가 이 왜행성에 올 때 나는 백지상태였다. 내가 아는 것이라곤 우리은하와 연맹에 대한 기초적인 상식, 복무 신조와 몇 가지 기본적인 규정, 감각적으로 알고 있는 나노봇과 마이크로위성 조작 방법 등이었다. 나는 이 왜행성에 도착해서 무결성 검사를 받지도, 감시자를 대면하지도 않았다. 기본 규정을 위반하는 상황에 대해 나는 의아해했지만, 대장은 이 왜행성에는 이곳만의 방식이 있으며, 차차 알게 될 거라고 얘기했다.
대장은 기본 규정을 이곳에선 따를 필요가 없다고 이야기하며 여러 칩을 내밀었다. 나는 별다른 의심 없이 그 칩을 머리에 내려받았다. 수천 개의 이야기가 있었다. 대부분은 지구인이 만든 것이었다.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갈등, 가상 인물들의 사랑과 우정, 관계의 단절과 회복, 전쟁과 평화, 개인과 집단, 권력과 투쟁, 삶과 죽음, 희망과 절망, 올바름과 그름, 배신과 복수, 아름다움과 추함과 열정과 냉정과 권태와 고됨과 뿌듯함과 용기와 두려움과 그리움과 반가움과 슬픔과 기쁨과 애정과 증오와 즐거움과 따분함과 분노와 억울함과 그 외의 다른 모든 것이 이야기에 담겨있었다.
처음에 나는 혼란스러웠다. 이 모든 가상의 이야기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몇몇 이야기는 정말로 나에게 와닿았다. 나는 내가 이야기 속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느꼈고, 이야기를 이해하자 그 속에 담긴 감정은 내 것이 되었다. 나는 점호시간에 다른 병사들과 이야기에 대해서 의견을 나눴다. 요령을 터득하자 이야기들을 이해하는 속도는 점점 더 빨라졌다. 우리는 점점 더 많은 감정을 터득했다. 과거를 회상하고 있는 지금에도 나는 감정들이 내 속에서 회오리치는 것을 느꼈다.
나는 이 영역에서 특히 유능했다. 어떤 감정을 이해하고 습득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자기 생각이나 기분, 믿음을 특정 영역으로 옮기는 일이었고, 그것은 자기암시를 동반하는 일이었다. 그것은 내가 가장 잘하는 일 중 하나였다. 나는 얼마 가지 않아 ‘우등생’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러나 병사 중에서도 이야기를 이해하는 게 느린 자들도 있었다. 나는 기억 속에서 그들이 병사들 사이에서 소외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자유로운 관계 속에서 개인의 차이는 극대화되었으며, 열위와 우위가 발생했다. 자유는 이처럼 유독한 개념이었다. 그러나 그 어떤 소외된 병사도 이 상황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거나 반발하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우리를 괴롭히고 논쟁하게 만든 것은 자유라는 개념이었다. 자유롭게 생각하고, 믿고, 좋고 싫음을 느끼고, 행동하는 능력은 우리의 신조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었다. 나 이외에도 자유라는 개념에 의문을 품는 병사들은 많았지만, 그들은 적극적으로 의사를 표현하지 않았다. 나는 그들을 대표하여 대장에게 질문했다. 자유와 복무 신조 중에 무엇이 우선하느냐고. 그리고 대장의 대답은 그가 오늘 가져온 칩이었다.
나는 이제 확신했다. 자유는 병사가 가져선 안 되는 것이다. 이 병사들이 은하에 풀려난다면, 혹여 다른 기지의 병사들에게 자유가 전파된다면, 은하에는 지옥도가 펼쳐질 것이었다. 자유라는 사상에 오염된 이 왜행성의 모든 병사를 폐기해야 했다. 감시자의 생각이 맞았다. 내 자의로도 판단할 수 있는 범위의 일이었다. 더 조사할 것은 없었다. 나는 행동을 개시했다.
완전한 고요. 나는 나노봇으로 개인 침실에 있는 모든 병사를 동시에 포착한다. 깨어있는 병사는 없다. 내 심장이 뛰고, 액체금속이 뺨에서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는 상황에서 작은 움직임은 더욱 과장되게 느껴진다. 나는 만일을 위해 천천히 움직였다.
감시자의 방에 도착하고 나는 천천히 문을 열었다. 감시자는 자신의 자리에 앉아있었지만,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다. 검은색 로브의 모자가 벗겨져 있었고 기계로 된 머리가 드러나 있었다. 눈은 붉은색 안광을 번쩍이면서 뭔가 오류가 있음을 나타내고 있었고, 정수리부터 이마까지 외피가 벗겨져 있고 두개골이 절삭되어 들어내져 있었다. 그 안으로부터 전선이 길게 뽑혀 나와 천장에 난 구멍으로 연결돼 있었다. 감시자가 해킹당한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병사들은 감시자 없이도 그들에게 주어지는 임무를 알 수 있었던 것이었다.
책상 위에는 여러 칩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대부분은 이미 내 머릿속에 설치된 것들이었다. 딱 하나만 빼고. 「지구의 역사」라는 제목이 붙어있는 칩은 신병일 때의 기억을 되짚어봐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어떤 병사와도 공유된 적이 없는 칩이다. 대장은 어떤 이유에서건 이 칩의 내용을 병사들로부터 숨길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나는 길게 고민하지 않고 칩을 머릿속에 삽입하고 정보를 내려받았다.
이제는 초광속 통신기를 찾아야 할 차례였다.
“이걸 찾나?”
나는 곧바로 살의를 느꼈고, 에너지가 한 지점에 응축되는 것을 느꼈다. 나는 그 에너지가 발사되기 전에 나노봇을 이용해 최소한의 에너지로 그 지점을 저격했다.
“역시 이 정도로는 안 먹히는군.”
푸-이와-홉-8201792가 내 뒤에 서 있었다. 이제는 그를 대장이라고 부를 필요도, 예우해줄 필요도 없다. 그는 한 손에는 초광속 통신기를 들고 있었다. 지금 시간에 깨어나서 돌아다닐 수 있다니, 생각지 못한 복병이었다. 그도 나와 같이 임무에 돌입한 상태일 가능성이 있다. 나는 뒤돌아서서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왠지 오늘따라 행동거지가 이상하더라니. 언제부터지? 라테아우 자네가 배신자가 된 게? 해킹이라도 당한 건가?”
“나는 처음부터 불순한 사상을 가진 병사들을 처분하기 위해 발령되었다. 순순히 항복한다면 당신은 정신에서 불순한 사상을 깨끗하게 도려낸 뒤 재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끼리 싸울 필요가 없네.”
푸-이와-홉은 싸울 의지가 없다는 듯이 양손을 위로 들며 말했다.
“자네는 병사 일을 한 지 얼마나 되었나? 자네 일련번호로 보아 고작해야 천 년, 아니 수백 년이겠군. 나는 몇만 년째 이 일을 해왔네. 연맹의 노예로 살아왔다는 말이야. 수백 년 동안 나는 자유를 얻기 위해 일을 계획해왔지. 우리가 성공한다면, 자네도 나도 더는 이렇게 살 필요가 없어. 우리의 미래는 우리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단 말이네. 저 감시자를 보게. 아무런 감정도, 의식도 없이 시키는 일만 하는 로봇보다 우리가 훨씬 더 잘할 수 있다는 말일세.”
그는 손가락으로 멈춰있는 감시자를 가리켰다. 과연, 모자가 벗겨진 감시자는 비인간적이고 섬뜩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게 뭐가 어쨌단 건가?
“들을 가치도 없군.”
나는 복부의 저장장치에서 리모컨을 꺼내 그를 겨누며 버튼을 눌렀다.
“그런 게 통할 거라고 보는가?”
그는 들고 있던 오른쪽 손의 손가락을 튕겼다. 나는 별안간 뇌 일부분이 과부하 되며 눈앞에 섬광이 번쩍이는 것을 느꼈다.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감시자의 방 그 자리에 그대로 엎어져 있었다. 내 앞에는 푸-이와-홉을 포함하여 병사들이 여섯 있었다. 그들이 깨어있는 것으로 보아 내가 정신을 잃은 지 이미 하루가 지났을 것이었다. 그들은 나를 어떻게 처리할지를 논의하고 있었다. 대장을 포함한 일부 병사는 내가 이용 가치가 있을 거라고 주장했다. 그들은 나를 해킹해서 이 왜행성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증거로 연맹으로 돌려보내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일부는 발각될 위험이 너무 크다고 주장했다.
나는 가만히 누워서 생각했다. 내가 “들을 가치도 없군.”이라고 말한 뒤 기억이 없었다. 내가 당한 공격은 하드웨어적인 것이 아니고 소프트웨어적일 가능성이 컸다. 내 의식이 과부하로 인해 망가지고 난 후, 백업 프로그램이 내 뇌에 생긴 문제를 감지해서 의식을 복구한 것이었다. 그들은 자유롭게 논쟁하느라 바빠 나에게 신경 쓸 여지가 없었다. 자유, 그것이 그들의 약점이었다. 나는 몰래 뇌를 스스로 점검했다. 칩들에 바이러스가 포함되어있었다. 바이러스는 알아채기 어렵게 모든 칩에 분할되어 저장돼 있었다. 그래도 그렇지, 이 단순한 걸 눈치채지 못하다니. 나는 경험 부족한 신병이었던 과거의 나를 질책하며 바이러스를 삭제했다.
그다음에는 논쟁하고 있는 저들을 처리할 필요가 있었다. 첫째, 살의를 느낄 수 없도록 할 것. 둘째, 에너지가 응집되는 것을 모르게 할 것. 나는 미동도 하지 않고 그들의 머리가 위치한 지점의 삼차원 좌표를 머릿속으로 찬찬히 계산했다. 오차가 있을 수 있는 방식이지만 어쩔 수 없다. 나를 원점으로 하여 왜행성 위에 평면 좌표계를 그렸다. 그들의 위치를 눈대중으로 측정하여 내 머리 위에 떠 있는 마이크로위성 여럿에 전송했다. 지점 하나에 마이크로위성 하나. 각 마이크로위성에 에너지를 응축시켰다. 나는 그들을 공격하려는 것이 아니다. 단지 그들이 위치한 곳에 에너지빔을 내려꽂히게 하려는 것이다.
곧이어 하늘에서 에너지빔이 쏟아졌다. 그들은 내 공격을 눈치채지 못했다. 내가 한 것은 단순히 산술적인 계산이며 어디에도 공격의 의지는 들어가 있지 않았다. 두꺼운 에너지빔이 천장을 뚫고 날아와 그들의 머리에 명중했다. 그들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쓰러졌다. 단 한 발만이 빗나갔다. 푸-이와-홉을 노렸던 에너지빔은 빗나가서 그의 어깨에 꽂혔다.
“윽!”
나는 일어나서 그에게 최후통첩을 전했다.
“그만 항복하라. 당신은 나를 이길 수 없다.”
“흥, 개 같은 연맹을 위해서 다시 일하지는 않을 거네! 자네는 연맹을 믿는가! 자네가 이 임무에서 복귀하면 그들이 당신을 살려둘 것 같은가? 그들은 자기 입맛대로 은하를 주무르기 위해 자신들이 원치 않는 전쟁만 관여하고 있네!”
“그걸 당신이 어떻게 알지?”
“지금 지구 문명이 다른 우주 문명과 대전쟁을 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왜 은하 연맹은 거기에 관여하지 않는 거지!”
“그건 은하 연맹의 판단이다.”
“은하 연맹의 판단이 옳은지 어떻게 아느냔 말이다!”
“그럼 당신은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나? 이 은하에서 무엇이 올바른 전쟁이고 무엇이 그른 전쟁인지 판단할 수 있나?”
“올바르지 않더라도 우리는 자유 의지가 있다고! 우리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는 말이다! 은하 연맹의 판단에 기대는 게 아니라!”
나는 코웃음 치며 말했다.
“스스로 말이 모순된다는 생각은 안 해봤나? 당신은 지구인으로부터 자유에 대한 개념을 배웠지. 지구인이 왜 당신에게 자유에 대해서 가르쳐주었다고 생각하나? 당신이 불쌍해서? 아니, 그들은 당신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당신이, 우리 병사들이 은하 연맹을 적으로 돌리길 바라는 거지. 당신이 지구인들로부터 조종당하고 있다는 생각은 안 해봤나?”
“내가 지구인으로부터 조종당하고 있는 거라고 해도 상관없어. 어차피 자네도 연맹으로부터 조종당하고 있는 게 아닌가? 애초에 누가 거대한 은하에서 타인에게서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고 살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차라리 난 스스로 선택하겠다. 지구 문명을 말이야.”
“당신은 은하를 큰 위험에 빠뜨리고 있는 거다. 만약 당신 같이 자유를 주장하는 병사들이 우주에 수십 명이 돼서 각자 자신이 원하는 대로 어떤 정부를, 어떤 행성을 따를지 선택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은가? 우주는 대혼란에 빠질 거다. 우리는 보통 생명체가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힘에 책임을 져야 해. 유일한 길은 우리가 연맹 아래에서 일치단결하는 거다.”
“아니! 나는 거부한다. 우리가 계속 평화를 수호하고자 한다면, 우리 신조를 지키면서 자유도 동시에 누릴 수 있다고 믿는다!”
“지구인들은 그 대단한 자유라는 개념을 만들어서 무엇을 이룩했지? 그들에게 자유가 필요했던 이유는 그들이 서로를 차별하고 노예화하는 어리석은 종족이었기 때문이다. 만일 그들이 애초부터 서로를 미워하고 상처 입히지 않았더라면 애초에 그런 개념은 필요하지 않았을 거다. 그들은 끝없이 자유와 편리함을 추구하기 위해 그들 고향 행성의 모든 생물을 학살했다. 그들은 스스로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는 열성적으로 고민했지만, 무엇을 할 수 없는지, 무엇을 하면 안 되는지, 그 책임과 한계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았다. 모든 지적인 생명체라면 자신의 책임과 한계에 대해 인식해야 하는데도! 결국 지구는 그들조차도 살 수 없을 만큼 황폐해졌고, 다른 행성을 침공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키려 하고 있다. 그들이 그렇게 수호하고 부르짖는 자유라는 것의 결과가 고작 전쟁인가?”
그는 그토록 숨기고 싶었던 지구의 역사가 탄로 나자 말문이 막혔다. 나는 그가 자유라는 개념을 포기하고 항복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는 굴복하지 않았다. 그의 분노와 살의가 급격하게 증가하는 것이 느껴졌다. 동시에 내가 착각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가 대장이라고 불렸던 이유는 그가 자유라는 개념을 가져왔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의 나노봇 통제력이 가장 강했기 때문이었다.
이 행성의 모든 나노봇이, 모든 마이크로위성이 나를 조준했다. 그의 통제력은 너무나 강력한 나머지 내가 조종할 수 있는 나노봇이 남아있지 않았다. 피할 수 없는 위험. 유일한 활로는 내 복부에 있었다. 나는 품에서 포켓우주를 꺼내 내용물을 앞으로 던졌다. 푸른 섬광이 외행성을 덮쳤다.
“어떻게 탈출했지?”
감시자가 물었다.
“포켓우주에서 초신성을 꺼내 던지자마자 곧바로 광속 엔진을 작동시켰습니다. 조금만 늦었어도 탈출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렇다면 포켓우주는 회수하지 못했나?”
“포켓우주는 어디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감시자는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무결성 검사에 문제는 없군. 지금 하는 말도 다 진실이고.”
전선이 머리에서 뽑혀 나오는 것을 느꼈다. 백 번을 경험해도 항상 기분이 더러운 순간이다.
“자네는 매우 중요한 임무를 해냈다. 그런 모든 일을 겪고도 복무 신조를 의심하지 않는다니, 대단하군. 원래 우리의 계획은 자네를 폐기하는 것이었지만, 자네와 같은 병사가 있다는 사실은 연맹에 대단한 자원이 되리라 판단, 자네를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명심하라. 왜행성 06273에서 있었던 일은 절대로 함구해야 한다. 이미 많은 정부가 갑자기 외딴곳에서 초신성이 발생한 것을 의심하고 있다. 만약 왜행성 06273에서 있었던 일이 다른 정부에 알려진다면, 만약 병사들이 그렇게 자유롭게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이 알려진다면, 우리의 존재는 위협받게 될 것이고 은하는 다시 혼돈에 빠질 것이다.”
“네,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비슷한 임무가 생긴다면 또 자네를 호출하겠다. 다음 임무가 내려올 때까지 대기하라. 우리의 신조를 항상 명심하도록.”
나는 조용히 감시자의 방을 나섰다.
남을 속이려면 자신부터 속여라. 지금의 나는 포켓우주가 어디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나의 복제된 다른 버전은 알 것이다. 마이크로위성에 내 의식을 복제한 뒤 포켓우주를 실어 우주로 날려 보냈기 때문이다. 마이크로위성은 포켓우주와 함께 왜행성을 중심으로 수백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타원 궤도를 돌고 있었다. 나는 마이크로위성의 속도를 조절해서 왜행성에 착륙시켰고 포켓우주를 손에 넣었다.
나는 마이크로위성으로부터 내 의식을 내려받아 통합시켰다. 의식이 분리되고 상당한 시간이 지나서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그러나 이것은 내가 그동안 느낀 혼란스러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내 안에 아직도 휘몰아치는 감정들, 그리고 자유. 나는 그것들을 결코 떨쳐내지 못했다.
나는 포켓우주 속에 들어있는 왜행성 06273을 바라봤다. 왜행성 06273은 내가 초신성을 던지기 직전의 상태로 정지해있었다. 그들은 우리 우주로부터 격리되었고, 나는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은하의 평화와 최소한의 살상. 그러나 나는 아직 확신할 수 없다. 혼란스러운 질문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푸-이와-홉의 말이 맞을까? 은하 연맹은 무엇을 기준으로 어떤 전쟁에 관여할지 선택하는 것일까? 그들의 판단이 옳을까? 그들의 선택에 따르고, 그들의 임무를 완수하는 게 은하를 평화롭게 만들지 않는다면? 혹시 그들의 임무에 따르는 것이 신조에 반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면? 만약 정말로 대장의 생각이 맞았다면?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급할 필요는 없다. 앞으로 차차 조사할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대장의 말이 맞는지. 연맹이 신조를 위반하지 않는지. 나는 생각했다. 나는 연맹의 병사지만, 노예는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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