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경은 실험실에 들어가기 전에 창현 선배의 긴 주의사항을 한 번 더 들어야했다.
“실험 데이터가 오염되면 안 돼. 기억하고 있지? 어떤 순서로 진행되는지 말야.”
수경은 이미 선배의 잔소리를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은 참이었다. 그래서 그는 건성으로 “네, 네.”하고 말했다. 그런 수경의 무심함이 창현 선배를 또 자극하고 말았다.
“너, 이 실험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는 거지? 이거 진짜 돈이 많이 들어간 프로젝트고, 내 졸업도 달려있다고. 처음 1분 동안은 버튼을 임의 순서대로 누르고, 어떤 순서로 눌렀는지 네가 기억하지도 말아야 돼. 그 다음 1분 동안은 버튼을 임의 순서대로 누르되, 너가 기억을 하고 있어야 하고. 그리고 마지막 1분은 우리가 정한 순서대로 버튼을 누르는 거야. 기억하지, 버튼 순서?”
“네, 그럼요. 3.14잖아요. 왼쪽 3번, 오른쪽 1번, 그리고 왼쪽 4번.”
수경은 말하면서 창현이 정한 순서가 정말 너드 같다고 생각했다.
“다행이네. 설마 까먹을 리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수경은 어깨를 으쓱했다.
실험 자체는 수경에게는 간단했다. 외부와 격리된 방에 들어가서, 왼쪽 버튼과 오른쪽 버튼을 좀 누르고 나온다. 창현의 말로는 단순히 격리된 게 아니라, 수경이 방에 들어가 있는 동안 외부와 내부의 정보 출입 자체가 완전히 통제된다고 말했다. 마치 슈뢰딩거의 고양이에 나오는 상자처럼. 차이점이라면,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죽거나 살거나지만, 수경은 방에 들어가서 왼쪽 버튼을 누르거나 오른쪽 버튼을 누른다. 창현은 덧붙여서 ‘이론상으로는’ 수경의 신체에는 어떠한 영향도 없을 거라고 말했다. 이론 물리에 영 관심이 없는 기계공학과 출신 수경은 창현의 실험에 대한 긴 이론적인 설명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수경은 8년 째 대학원에 있어 지인이 다 졸업하고 없는 창현의 부탁을 듣고, 일당을 5만원 준다는 말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실험에 참여했을 뿐이었다. 창현의 졸업 논문의 주제는 ‘인간 의식 발생의 양자적 효과와 자유의지의 발생’에 대한 것이었는데, 워낙 실험의 스케일이 크고 예산이 많이 필요해서 실험을 설계하고 펀딩을 받는 데에만 2년 정도를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러고 나서 실제로 실험실을 시공하는 데에 1년이 더 들었다. 애석하게도 창현의 지도교수는 그 과정에서 어떤 도움도 주지 않았다. 창현은 대학원 5년차에 준비한 실험을 3년 만에서야 시작하게 된 것이었다. 창현이 이번 실험에 많은 걸 걸고 있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그에 반해 수경은 그다지 의욕이 없었다. 그가 가장 의욕적인 부분은 일당으로 받은 5만원을 어디에 쓸까 고민하는 것이었다. 다행인 점이라면 그가 이 실험에서 맡는 역할은 버튼을 누르는 것뿐이었다.
실험이 준비되는 데에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됐다. 수경은 연구실에서 창현이 실험 준비로 혼자서 1시간 넘게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을 앉아서 기다려야 했다. 드디어 창현은 실험 준비가 완료되었다는 사인을 보냈다. 수경 앞에 문이 열렸고, 3미터 남짓 되는 비좁은 격리실이 나타났다. 수경이 격리실을 지나 실험실로 들어가면 격리실은 접혀서 없어지고, 실험실은 잠깐 동안 외부와 격리 상태가 된다. 실험실 안에는 건전지로 작동하는 아날로그 시계가 배치되어 있어 수경이 약속한 시간에 버튼을 누를 수 있도록 돕는다.
고요한 가운데에 아날로그 시계가 째깍째깍 가는 소리만이 울려퍼졌다. 초침이 드디어 12를 지나치고, 수경이 버튼을 누를 시간이 왔다. 먼저 처음 1분은 왼쪽과 오른쪽 버튼을 번갈아가며 임의로 누르되, 어떤 순서로 눌렀는지 기억하지 않아야 하는 부분이었다. 수경은 대충 딴 생각을 하며 버튼을 가볍게 두드렸다.
슈뢰딩거의 고양이라. 수경이 아직 과학에 관심이 많던 고등학교 시절 어느 교양서적에서 읽어본 경험이 있다. 50%의 확률로 독가스가 퍼지는 상자 안에 고양이를 넣어놓고 고양이가 들어있는 상자 내부를 관측하지 않으면 고양이가 살아있는 상태와 죽어있는 상태가 중첩돼있다고 했던가? 그런데 50%의 확률로 독가스가 퍼지는 장치는 어떻게 작동하는 거지? 그리고 왜 하필 고양이지? 불쌍한 고양이.
수경이 다른 생각을 하는 사이에 1분이 지나갔다. 그 다음은 수경이 버튼을 누르고, 어떤 순서로 버튼을 눌렀는지 기억해야 하는 부분이었다. 나중에 수경이 버튼을 누른 순서를 창현에게 알려주면, 창현이 실제로 버튼이 눌린 순서와 비교한다고 했다. 아무래도 기억하기 쉬운 순서로 누르는 편이 좋겠지. 수경은 그의 생일인 12월 15일을 선택했다. 왼쪽 1번, 오른쪽 2번, 다시 왼쪽 1번, 그리고 오른쪽 5번.
버튼을 마구잡이로 눌렀던 실험의 첫 번째 단계와는 달리 두 번째 단계에서 1분은 상당히 긴 시간이었다. 그는 버튼을 다 누르고 나니 별로 할 일이 없었다. 째깍째깍 가는 시계를 바라보며 수경은 또 잡생각에 빠졌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된 셈이라는 거지? 자신이 고양이가 되었다고 생각하니 약간 기분이 오묘했다. 지금쯤 창현 선배는 내가 누른 버튼의 결과를 살펴보고 있으려나?
시계의 초침은 다시 12를 지나쳤다. 이제 마지막 단계였다. 왼쪽 버튼 3번, 오른쪽 1번, 왼쪽 4번. 수경은 실험이 드디어 끝났고 5만원을 받을 생각에 신이 나기 시작했다.
접혔던 격리실이 다시 실험실에 연결되었고, 실험실의 문이 열렸다. 격리실에서 수경이 먼저 맞닥뜨린 것은 밖에서 들리는 앙칼진 소리였다. 화가 나서 뭐라고 소리치는데 격리실의 문이 아직 열리지 않아 잘 들리지 않았다. 격리실의 문이 열리고 나서 수경은 약간 어리둥절했다. 격리실에 들어섰을 때와 비교해서 방과 복도의 배치가 조금 달라졌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한 점은 멀리서 들리는 창현 선배의 말이었다.
“야, 너 미쳤어?! 내 실험 망치려고 작정한 거야? 왜 약속한 대로 안했어! 처음에 약속한 대로 누르고, 마지막에 맘대로 누르라고 했는데 왜 반대로 한 거야! 이 실험 한 번 준비하는 데에만 얼마가 드는지 알아?!”
수경은 더욱 어리둥절했다. 창현 선배의 말은 수경이 기억하는 바와는 전혀 반대로였다. 더욱 이상한 점은, 창현 선배의 목소리가 조금 바뀐 것 같다는 것이었다. 그가 아는 목소리에 비해서 훨씬 더 높고 앙칼졌다.
이윽고 창현 선배가 화를 내며 코너를 돌자 수경과 격리실 앞에서 마주쳤고, 수경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뾰족한 귀, 노란 홍채와 세로로 찢어진 동공, 검은 코와 삐쭉 튀어나온 송곳니, 얼굴과 손에 난 덥수룩한 털까지. 창현 선배의 얼굴이 고양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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